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가구 시장은 장단점이 명확하다. 오프라인의 경우 직접 보고 살 수 있지만 대리점 등을 통해야 하기에 판매 가격이 높다. 반면 온라인은 가격이 저렴하지만 품질에 확신을 가지기 어렵다. 같은 브랜드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제품 자재가 다른 경우도 많다.
최정석 대표는 이랜드 유통사업부에서 가구의 모든 과정을 몸으로 부딪쳐 가며 배웠다. 이후 영국 가정용품 브랜드 B&Q 선임 팀장을 거쳐 까사미아 등 온라인 유통 사업을 도맡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가구 유통 시스템의 문제를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시간 끝에 그는 온오프의 장점을 살린 융합형 유통 비즈니스 모델로 ‘스튜디오 삼익’을 창업했다. 2017년 설립된 신생 회사지만 올해 연 매출 550억 원을 바라보고 있다. 놀랍게도 직원 수는 30명 안팎. 가구 유통업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는 최정석 대표를 만나보았다.
- 이랜드를 첫 회사로 지원했다.
“대학 4학년 방학 때 인턴 모집 공고가 떠 지원 했다. 90년대 중반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이랜드 하면 젊은 기업이었고 취업률 선호도도 1,2위를 다투곤 했다. 인턴 3개월 후 신입사원에도 지원하게 됐는데 다행히 최종 합격을 했고 유통 사업 부서로 가게 됐다.”
- 유통 사업 부서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전공과의 연관성은 딱히 없었다. 신입사원 면접을 보러 가던 중 이랜드 기사가 난 주간지를 읽었는데 회사가 유통 사업을 대대적으로 시작할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면접관분들에게 오히려 이 사업이 무엇인지 설명을 좀 해달라고 부탁 드렸다. 들어보니 아직 유통 전문가가 없는 상황이었고, 그 분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가구 부서 중 배달 업무를 시작한 이유가 있는지?
“굉장히 단순한 이유였다. 3개월간 신입사원 교육 후 첫 임무는 현장 경험이었다. 군포의 복합 화물 센터에서 동기들 130여명이 모였는데 절반 정도가 패션 분야를, 나머지가 생활 용품을 지원했다. 가위바위보로 원하는 세부 분야를 정하는 과정에서 가구를 선택했다. 두 번째 가위바위보를 통해 세부 업무를 정했는데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배달 업무를 맡게 되었다.”
- 가구 배달 업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인가?
“손님들 집에 가구를 배달하고, 조립하는 역할부터 시작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할 리 없었다. 조립도 가끔 엉성했고, 부품을 잃어버리기도 했으며, 실수도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보내니 회사에서 파는 모든 가구를 조립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배송/물류/품질/재고 관리 등을 두루 하다 보니 나름 가구 분야 전체를 볼 시각이 생겼다.”
- 입사 3년 반 만에 가구 MD가 됐다.
“현업 경험 후 마케팅 부서로 갔다. 당시 유통 쪽 사람들은 대체로 MD를 희망했다. 지금은 많이 분업화 되었지만 당시 MD의 역할은 하나의 제품을 상품으로 판매하기 위한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했다. 패션 유통사 안에서는 꽤나 신생 부서였던 가구의 경우 실전 경험을 제대로 해본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10년차에 할 일을 3년 반 만에 하게 되었다.”
- 처음엔 언어 문제로 쉽지 않았다고?
“겁도 났지만 선배들은 일단 오면 다 할 수 있다며 격려를 해줬다. MD 업무는 대체로 해외 일이 많았는데 영어나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해외에서 전화가 오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당황했다. 그래서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미리미리 정리해두기 시작했다. 사전 들고 다니면서 열심히 의사소통 했고. 그래도 가구라는 공통의 관심사가 있으니 어떻게든 소통이 가능했다.”
- 이랜드의 ‘모던하우스’, 어떻게 성장시켰나?
“당시(현재는 매각되어 독립사업체로 활동) 이랜드 유통사업부의 생활용품 카테고리 ‘모던하우스’라는 브랜드 내 가구를 담당했다. IMF 이후 저렴한 부동산이 많이 나오면서 유통사업부 전체의 사업 확장과 함께 다양한 경쟁력을 갖추게 돼 급속한 성장을 할 수 있었다.”
- 가구 MD를 담당하며 중점을 뒀던 부분은?
“가구에 사용되는 모든 부품을 다 알고 있다 보니 공장과의 의사소통이 굉장히 수월했다. 그래서 제품 리스크 관리 및 로스를 줄이는데 효과적일 수밖에 없었고. 초반 물류에서 일했던 게 나중에는 정말 큰 자산이 됐다.”
- 90년대 가구 시장은 어땠나?
“90년대 이전에는 전통적인 가구 브랜드가 많았다. 그러다 IMF를 기점으로 대부분의 회사가 사라졌고, 호황일 때의 가구시장은 지금의 프랜차이즈 매장이 있을법한 도심의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수입명품가구를 비롯해 높은 마진을 남기는 가구시장이었다.”
- 가구 회사에 대한 오해가 있다고?
“가구는 전부 가구회사가 만들 거라 생각한다. 그런데 가구는 아이템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산업군이 되버린다. 침대를 만드는 회사에서 매트리스를 제작할 수 없다. 철제 침대를 만드는 곳에서 목재 침대를 만들 수도 없고. 그래서 종합 가구 브랜드의 개념으로 품목별 좋은 제품들을 기획, 외주 생산 또는 매입을 통해 가져와 판매하는 것이다.”
- IMF이후 변화된 점들이 있다면?
“IMF 이후 유통사가 급속히 활성화되었다. 부도로 인한 재고가 엄청났고 부피가 크다보니 유통 채널로 흘러 갈 수밖에 없었다. 전통 브랜드들이 좋은 자리에서 판매하던 기존 흐름이 깨진 것이다. 이후 가구 판매점들이 다양한 유통사를 통해 물건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다. 여기에 온라인, 홈쇼핑 등 신 유통 채널들도 생겼다.”
- 이랜드를 퇴사한 이유는?
“이랜드에서 10년 정도 일했다. 이랜드는 좋은 회사고 기회도 많이 주는 곳이었다. 그런데 매출 규모가 커지다 보니 가구 전공자나 디자이너를 외부에서 영입하기 시작했다. 그런 변화의 시점에, 중국 생산 쪽을 담당해 달라는 제안을 받았는데 그 업무가 와 닿지 않았다. 그즈음 헤드헌터에게 전화가 왔다. 영국 B&Q라는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면접을 보라는 제안이었다.”
- 어떤 업무를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나?
“영국 B&Q는 홈 주택 개보수 관련 제품을 판매하는 브랜드로 전 세계 3위, 유럽 아시아권 1위를 차지하는 글로벌 기업이었다. 중국에만 매장이 20개가 넘었다. 한국 진출을 고려 중이었고 그 중 가구 파트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글로벌 기업의 업무 방식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이직 후 한국 지점 런칭을 준비했다.”
- 그런데 런칭이 잘 안됐다고?
“그렇다. 가구와 몇 개 카테고리를 제외하면 실적이 좋지 않았다. 사실 해외 브랜드의 경우 현지화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역으로 우리가 해외 진출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주거 환경이 다르니 가구도 나라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 어떤 점들을 배웠나?
“일단 너무 많은 카테고리에 놀랐다. 당시 모던하우스의 경우 5개 정도였는데 이 곳은 20개가 넘었다. 그런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쉽지 않았다. DIY에 익숙하지도, 그런 문화도 없던 게 컸다. 결국 롯데마트와 조인해 2호점까지 냈지만 가구와 소수의 카테고리만 살아남았다. 당시 가구는 아시아 전체 중 한국이 1등을 할 정도였다.”
- 글로벌 회사의 차이점이 있다면?
“런칭을 준비하면서 MD와 구매(Buyer)의 차이를 처음으로 알게 됐다. 사실 이랜드에서는 구분 없이 다 했기에 모든 게 MD의 역할인 줄만 알았다. MD란 상품화 할 수 있는 제품을 골라내는 게 주 업무였다. 얼마에 몇 개를 살 건지의 결정은 구매 담당의 역할이었다. MD와 구매 담당은 서로의 업무를 절대 공유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시스템인 것이다.”
- 이랜드에서의 경험이 엄청난 자산이었겠다.
“그렇다. 한국이 그런 시스템 체계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MD로서 매장과 구매 의사 결정,생산 현장을 모두 경험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
- 승진도 했지만 바로 퇴사도 감행했다고?
“가구 분야 실적 1위를 하면서 선임 팀장을 담당했다. 그 때가 2005년도였다. 하지만 곧 퇴사를 결심했다. 가장 큰 건 글로벌 브랜드의 현지화 문제였다. 임원들은 결국 영국 현지 사람들이었고, 그들은 한중일의 차이를 잘 몰랐다. 그래서 엉뚱한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제시하곤 했다. 행사용 상품 제안이 대만이나 중국의 사례를 적용해 가정용 금고, 다다미인 경우도 있었다.”
- 또 다른 문제들은 무엇이었나?
“제품 라인업 선정도 답답한 부분이 있었다. 우리는 도배 문화인데 그들은 페인트 판매를 감행했다. 우리가 영국 문화를 따라갈 거라 확신하는 느낌이었다. 내부 사정도 있었다. 당시 중국 시장이 너무 커 거기에 집중하자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한국 매장 철수를 빠르게 결정했다.”
- 이후 창업에 도전했다.
“인터파크에 다니는 옛 이랜드 후배가 나에게 온라인으로 사업을 해보라고 제안을 했다. 가구를 온라인으로 판다고? 가구는 만져보고 직접 봐야 하는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강하던 때다. 그런데 비싼 가격에도 가구가 꽤 잘 팔린다는 거다. 분석 자료들을 보니 해볼 만하다 싶었다. 하자가 적고 관리가 쉬운 소파를 판매 아이템으로 선택했다.”
- 자본금은 어느 정도 들었나?
“퇴직금과 모아둔 돈 합해 4,500만원을 가지고 거래하던 중국 공장들에 전화를 했다. 중국의 경우 창업과 개인 사업이 활성화 되어 있기에 바로 오케이를 해줬다. 소파로 모델 2종, 컨테이너 3개 운영할 분량으로 셋팅 했다.”
- 판매 실적은 어땠는지?
“첫 기획전을 2006년도에 시작했다. 당시에는 쇼핑몰 체계가 안 잡혔던 때라 가구 브랜드가 많지도 않았다. 소식이 없다가 일주일 후에야 구매 건이 등록 됐다. (너무 기뻐서 자전거타고 마포에서 여의도까지 달리며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주문량이 늘더니 한 달 만에 완판이 됐다.”
- 모델 수가 점점 많아졌다. 재고 관리는 어떻게 했나?
“보통 브랜드 소유의 창고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게 하진 않았다. 공장에 부지가 남는 경우, 별도 계약하거나 그 쪽에서 직배송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라인업을 짰다. 그러면 공장 관리에 대한 부담도 없고 이점이 많아진다.”
- 3년 만에 사업을 접은 이유는?
“의도적으로 접었다. 처음에는 나만의 작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게 시작이었다. 그런데 시장은 정글이었다. 내가 잘 팔았을 때는 인터파크 가구 랭킹 1~3위가 모두 내 물건이었다. 그렇게 되면 타사 쇼핑몰들이 가만있질 않았다. 잘 팔리는 제품을 따라해 생산하며 가격으로 밀어내려고 했다. 경쟁이 심해지니 점점 마진이 남질 않았다.”
- 여기에 또 다른 사건도 있었다고?
“당시 나는 구매하는 바이어 역할도 직접 했기에 납품가에 대한 경쟁력이 있었다. 당시 어떤 브랜드에 몇 개 제품을 별도로 납품한 적이 있다. 그 때 쇼핑몰에서 팔던 쇼파를 더 비싸게 팔아 줄 테니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고가로 내놓은 제품이 더 잘 팔리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때 브랜드와 나 자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 어떤 고민들이었나?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것들은 과연 시장에서 의미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이었다. 브랜드 신뢰도에 대한 것들도 고민하기 시작했고. 단순히 브랜드라는 이유 하나로 가격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며 일단은 정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다시 조직으로 들어갈 결심을 했다.
“사업 정리를 하던 중 기존에 거래하던 온라인 벤더 회사에서 해외 가구 라이센스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밀라노에서 매트리스 회사 하나와 계약을 추진하던 중 같은 회사에서 ‘까사미아’ 브랜드의 온라인 런칭 일도 해보자는 제안이 이어졌고. 그렇게 온라인 벤더 일을 하게 되었다.”
- 당시 어떤 직책을 맡았는지?
“전무이사 직함으로 해외 라이센스 및 마케팅, 개발 업무 전반을 맡았다. 당시 까사미아, 동서, 삼익, 잉글랜더, 스칸디아 브랜드 등을 담당했고. 지금의 사업을 하기 전까지 8년 정도 이 회사를 다녔다.”
- 창업을 하기까지 과정은?
“다니던 벤더 회사에서 담당하던 브랜드 중, 삼익가구의 온라인 채널을 별도 법인화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삼익가구의 온라인 사업을 직접 운영할 ‘스튜디오 삼익’을 창업했다. 사업영역은 온라인을 중심으로 홈쇼핑, 직영 매장 등 이었다. 기존 삼익가구의 대리점 방식이던 오프라인 사업 외 제한을 두지 않는 독립 법인 형태였다.”
- 창업 자본금은 어떻게 준비했나?
“나는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자본금을 마련했고, 삼익가구 본사의 일부 지분 투자와 가능성에 뜻을 둔 개인 투자자 몇 명이 함께 했다. 그렇게 총 5억 원으로 회사를 차렸다.”
- 회사 셋팅 과정이 궁금하다.
“2017년 6월부터 총 4달을 준비했다. 전 직장에서 일했던 직원들 몇 명과 함께 일하고 싶다는 친구들이 모이니 총 6명의 직원이 갖춰졌다. 디자이너, 영업, 고객관리 등의 업무 담당자였다. 현 사무실 한켠에 책상과 랜선만 설치해놓고 허름하게 시작했다.”
- 첫 달부터 순항이었나?
“2017년도 추석 연휴가 10일 정도 됐는데, 연휴 전 제품을 올려놓고 추이를 보기로 했다. 그런데 끝나고 보니 매출이 2,400만원 찍혀 있었다. 그렇게 10월 한 달만 매출이 총 3억이었다. 이후 11월에는 한 오픈마켓과 큰 기획전을 잡았다. 그 쪽에서만 매출이 3억이 나왔고, 11월 전체 매출은 6억이 잡혔다. 12월 전체 매출은 10억을 기록해 점점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 매출은 순항이지만 자금이 없어 괴로웠다고?
“자금 문제가 정말 힘들고 어려웠다. 쇼핑몰은 구매를 하면 구매결정을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길면 두 달 후에야 지급 받을 수 있다. 하지만 협력 업체에게는 월 별로 지급을 해줘야 한다. 은행에 사정하면서 대출도 받고 개인 돈도 부어가며 그렇게 첫 해를 버텼다. 이후 벤처기업 인증 등을 받으며 조금 수월해졌다. 그래도 한 번도 업체에 지급이 밀린 적은 없었다.”
- 그렇게 올해 550억 매출을 바라보게 됐다.
“첫 해 매출이 23억 정도였고, 2019년 매출이 350억 정도였다. 올해는 550억 매출을 바라보고 있고. 아직까지 회사 주주들에게 한 번도 배당을 하지 않았다. 전체 이익 100프로를 회사에 재투자 하고 있어서다. 조직이 안정되기까지 좀 더 투자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 빠른 성장에 힘들 때도 있다고?
“매출이 늘면 만드는 사람들이 굉장히 힘들다. 덩치를 잘 키운다는 게 결코 쉽지 않는 과제다. 업체와의 밸런스도 중요하다. 자재를 미리 구입해 드리는 등 일을 수월하게 해주려고 한다.”
- 삼익가구의 오프라인 제품도 판매하나?
“오프라인 제품과 겹치지 않는다. 제품 라인업은 전부 새롭게 짠 것이다. 다행히 이 쪽 일을 오래 하다 보니 그 셋팅이 4개월 만에 가능했다.”
- 업체들은 어떻게 관리하는지?
“신뢰관계를 잘 쌓아야 한다. 요즘 시장은 누구나 다 힘들다. 결재도 배려를 해준다면 좋은 거래처들이 많이 생긴다. 우리도 7군데에서 시작해 지금은 40개 업체와 거래 중이다.”
- 융합형 비즈니스 모델을 지향한다.
“Off-line to On-line나 Off-line for On-line은 이미 세계적인 트렌드다. 우리가 판매하는 온라인 제품은 가구계의 SPA 브랜드라고 보면 쉽다. 하지만 살면서 우리가 가구 살 일은 몇 번 없다. 그래서 종합 가구 판매점 역할인, 우리의 브랜드를 보여줄 쇼룸을 만들었다. 아직 검증된 숫자나 효과는 미지수고 실험 단계다. 그래도 보완 및 발전하는 형태로 가고 있다고 본다.”
- 현재의 가구 시장은 어떤 흐름인가?
“아직까지 대리점 사업이 활성화된 브랜드의 경우 온라인 관리는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모델을 구분하거나 주력 상품군은 온라인에서 아예 팔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직까지는 여러 형식이 섞여 있고 테스트 과정이라고 본다. 앞으로 오프라인을 온라인으로 끌어주는 회사나, 플래그십 스토어의 역할아 점점 커질 거라 생각한다.”
- 예전의 창업과 스튜디오 삼익, 차이는 뭘까?
“그때는 혼자였지만, 지금은 함께 하는 선수들도 많아졌고 매출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성장 중이다.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진 것이다. 예전에는 마치 시냇물에 떠 있는 종이배 같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해야 할 일도 보이고 하고 싶은 일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 스피드와 멀티태스킹을 강조한다고?
“정말 중요하게 보는 부분이다. 외국 계 기업을 경험해 보니 개인은 부품이었다. 그 영역에서 빠져나오면 대체 가능하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전체 일을 못한다. 그래서 직원들이 그 과정을 최대한 많이 알 수 있게 하는 업무 과정을 추구한다. 우리 영업팀장은 디자이너 출신이고 영업이사는 개발자 출신이다. 멀티를 통한 내부 역랑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
- 의사 결정 과정도 간소한가?
“그렇다. 누구한테 컨펌 받을 필요도 없고 그런 절차도 없다. 의사 결정 내리는 사람이 현장에 같이 가서 한 번에 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고객에게 가는 제화와 서비스는 서류 작업과도 큰 상관이 없다. 그래서 우리 회사는 페이퍼 워크가 거의 없다.”
- 누구에게나 결정 권한이 주어지나?
“제품의 구조적 부분이나 리스크가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현장에 가는 사람이 최종 결정자가 된다. 그렇게 권한을 위임한다. 물론 몇 번 실수는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경험하고 테스트해야 리스크도 줄어든다. 그런 상황을 통해 학습 효과가 엄청나게 올라간다.”
- 스튜디오 삼익이 추구하는 경영 방식은?
“우리는 대중 소비자들에게 가성비와 퀄리티 좋은 제품을 제공하는 회사다. 기본기가 핵심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전체적인 방향과 목표가 정해지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각자가 해보고 싶은 시도를 다양하게 해보고 있다. 나는 이런 방식이 우리가 생각하는 말초신경 같은 감각이 살아있는 운영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인원 대비 생산성이 높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 그럼에도 조직의 문제는 있을텐데?
“아직까지 우리의 문제는 성장통이다. 너무 갑자기 성장하다보니 병목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서로의 업무를 이해하는 동시에 멀티태스킹이 필요한 것이다.”
- 가구 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각 ‘value chain’의 균형이라고 생각한다. 소재, 가공별 역량, 시공, 배송, 물류까지 직접 할 것과 외부의 힘을 빌릴 것,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집중 할 것에 대한 선택 등을 정리하여 전체 프로세스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최대한 잘 활용할 전략을 짜야한다.”
- 스튜디오 삼익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예를 들어 공장에 창고가 있다면 주문량을 맞춰주는 대신 창고에 대한 사용료를 지불해 직배송을 하게 한다. 가구의 가장 큰 문제나 하자는 배송 중 벌어져서다. 우리가 모아서 보내면 그 과정은 곧 비용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예로 침대와 매트리스를 만드는 두 개의 회사가 있다. 그런 경우 매트리스를 침대 창고로 보내 함께 배송을 요청한다. 대신 배송비를 좀 더 드린다. 물량이 확보되면 배송이 직접 가지러 가는 경우도 있다. 결국 물량에 따라 배송과 보관 방식을 그때그때 해결하는 것이다. 가장 현실적인 것들을 디자인 해주는 게 우리의 차별점이다.”
- 그렇게 월 4만 건의 배송을 컨트롤 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 소유의 회사 창고는 없지만 한 달에 4만 건 배송을 하고 있다. (그 중 2만 건 정도가 택배 배송이다.) 서로의 필요를 잘 알기 때문에 그렇게 꾸릴 수 있는 것이다. 신규 업체가 생기면 무조건 배송 라인부터 함께 고민한다. 그래야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가구의 핵심이자 모든 유통의 핵심은 결국 물류다.”
- 스튜디오 삼익의 목표는?
“내가 최고의 가구 전문가도 아니고 우리 회사가 최고의 가구 회사도 아니다. 다만 정확한 가치를 잘 전달하는 유통 회사라는 지향점을 가지고자 한다.”
- 어떤 비전을 꿈꾸는가?
“결국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의 확장을 지향한다. 지금도 판매 물품의 20프로는 가구가 아니다. 아직은 쉽지 않지만 인테리어 시공 쪽도 고민 중이다. 가구와 시공을 둘 다 잘 하는 기업은 거의 없는데 하다보면 방법이 생길수도 있지 않겠는가.”
- 해외 진출 계획은?
“베트남 쪽에서 시장 테스트를 여러 방식으로 해보는 중이다. 베트남은 독특한 게 모든 걸 페이스북으로 진행 한다. 전자상거래도 그렇고 대행으로 참여하는 업체들도 많다. 그렇게 다방면으로 시도하며 조심스레 기회들을 보고 있다.”
- 최정석 대표 개인은 어떤 지향점으로 가지고 있나?
“이미 나는 외형이나 실력에 비해 현 상황이 분에 넘친다고 생각한다. 여러 가지 해보고 싶은 것도 많고 욕심도 있지만, 선순환 되는 기업으로 잘 꾸려가고 싶다. 건강한 나무처럼 함께 하는 사람으로서 직원들, 협력사들과 함께 열매를 맺으며 나아가길 바란다. 변화가 빠른 온라인 시장인 만큼 시대를 잘 공유하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다.”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원부연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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