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 계곡의 한 지류인 장창곡(長倉谷) 정상부근에는 수백 년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너진 석실(石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던 1924년 10월 10일 이곳에서 불상 하나가 발견됐다. 의자에 앉은 형식(倚坐像·의좌상)이었는데, 이는 5~6세기 중국 남북조시대 이후 크게 유행한 미륵불의 상징적 자세다. 원래는 이 미륵불이 본존으로 가운데 있고, 좌우 양쪽에 협시보살이 있는 삼존불상이었다. 하지만 두 협시보살은 일찌감치 경주 내남면 월남리의 민가에 옮겨진 상태였고, 조선총독부는 새로 발견한 본존불과 함께 완전한 삼존불 형식을 갖춰 조선총독부박물관 경주분관에 전시했다.
문화재청은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慶州 南山 長倉谷 石造彌勒如來三尊像)’으로 불리는 이들 불상을 포함한 5건의 유물을 1일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관련 기록과 조각 양식 등으로 미루어 1,300여 년 전인 7세기 신라 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644(선덕여왕 13)년에 생의(生義)스님이 경주 남산 골짜기에서 발견해 삼화령(三花嶺)에 봉안한 미륵상에 대한 기록이 있고, ‘기이(紀異)’편에는 신라 경덕왕 때 충담사 스님이 차(茶)를 공양했다는 삼화령 미륵세존 설화가 전한다. 하지만 삼국유사에 원소재지로 적힌 ‘삼화령’에 대한 근거 자료가 발견되지 않아 불상이 발견된 계곡 이름을 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이라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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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상은 어린아이처럼 귀엽고 천진난만한 용모가 특징이다. 이에 ‘삼화령 애기부처’라는 별명으로도 통한다. 본존상이 원만한 얼굴에 두 눈을 아래로 지그시 내려 사색에 잠긴 표정이라면, 양쪽의 두 보살상은 1m 남짓한 아담한 체구에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입가에 해맑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이처럼 어린아이의 4등신 신체 비례를 보이는 불·보살상은 중국 6∼7세기 북주(北周)시대부터 수(隋)나라에 걸쳐 유행했고, 우리나라에는 7세기 신라에서 주로 조성된 것이라 양식의 영향관계도 유추할 수 있다.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 관계자는 “‘경주 남산 장창곡 석조미륵여래삼존상’은 경주 남산이라는 원위치가 명확하게 확인된 점,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의좌형 미륵삼존불이자 신라인들의 신앙생활이 반영된 대표작이라는 점, 마치 불심(佛心)과 동심(童心)이 조화를 이룬 듯한 7세기 신라 전성기의 수준 높은 조각양식을 보여줘 한국 조각사에 중요한 학술·예술적 위상을 지닌 작품이므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들 외에도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원당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 복장전적’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및 복장유물’ ‘공주 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사보살입상 복장전적’ 등 총 5건이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문화재청은 30일간의 예고 기간 중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 지정할 예정이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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