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기자가 방문한 경북 포항의 포스코 2고로. 작은 철문을 열어 들여다본 출선구(出銑口)에서는 오렌지색 섬광이 힘차게 뿜어져 나왔다. 맑은 아침 찰나의 태양이 내는 빛깔, 쇳물이다.
한국의 조선·자동차·건설·기계업이 융성한 배경에는 양질의 ‘산업의 쌀’ 철을 만드는 고로가 있어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철강산업은 한계에 봉착했다. 전 세계적으로 철강 수요가 정체된 가운데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경쟁이 치열해졌고 고객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혹독한 원가절감과 품질개선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려워진 것이다. 일부 ‘베테랑’ 현장 근로자들의 감과 경험에 의존하는 현실에서는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였다.
포스코는 이 같은 난제에 대한 답으로 ‘인공지능(AI)’을 택했다. 베테랑들의 경험과 지식에 AI를 입혀 스스로 학습해 판단하고 개선할 수 있는 시스템 도입에 투자했다. 세계 최초로 AI를 적용한 고로인 포항 2고로가 바로 그것이다. 원료 품질검사부터 쇳물 온도측정까지 과거 직원들이 직접 작업했던 위험한 일들을 모두 센서와 AI가 도맡아 하고 있다.2고로에서 뜨거운 쇳물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직원들의 모습을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직접 직원이 바람구멍을 통해 1,200도의 고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AI를 도입한 후에는 상황실에서 컴퓨터가 추가 연료를 투입하거나 투입량을 줄여가며 고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한다. 쇳물의 원료인 철광석의 수분 비율을 확인하는 작업도 직원들이 하루 3회 삽으로 떠서 수동으로 했던 것을 센서가 사진을 찍어 분석한다.
결과는 대성공. 고로에서 생산하는 쇳물의 품질을 크게 높였고 쇳물 생산량도 연간 190만5,000톤에서 199만톤으로 늘었다. 이는 승용차 8만5,000대를 추가로 만들 수 있는 수준이다. 이두흔 생산기술전략실 리더(팀장)는 “조업자들의 경험과 숙련도에 따라 품질이 달라졌던 이전과 달리 AI 도입 이후에는 균일하게 좋은 품질의 쇳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7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등대공장(Lighthouse Factory·제조업의 미래를 이끌 공장)’에 뽑혀 성과를 인정받기도 했다.
포스코의 ‘스마트 체제전환’의 중심에는 포스코 고유의 철강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인 ‘포스프레임’이 있다. 포스프레임은 세계 최초의 연속 제조 공정용 스마트팩토리 플랫폼이다. 포스코는 포스프레임을 이용해 연속되는 전 공장의 철강 공정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형화한다. 이후 포스프레임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AI 등 신기술을 이용, 데이터를 스스로 학습해 최적의 공정 조건을 내놓고 공장을 제어한다.
포스프레임은 제철소의 생산계획을 수립하는 단계인 수주 공정부터 제선·제강·연주·압연·도금에 이르는 전 공정에 광범위하게 적용된다. 스마트팩토리 도입 결과 모든 공정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다. 제강 공정에서는 전로 최종 온도 적중률을 기존 80%에서 90%로 높였고 열 제어에 사용되는 원료 사용량을 60% 줄였다. 도금 공정에서는 제품의 강종, 두께, 폭, 조업 조건과 목표 도금량을 스스로 학습해 정확히 제어할 수 있도록 해 도금량 제어 적중률을 89%에서 99%까지 높였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포스코에서 나오는 제품의 품질을 균일하게 맞추는 ‘원 포스코 원 퀄리티’를 실현했다”며 “제철소 현장의 특정 문자, 형상, 움직임 등을 자동으로 감지하고 수집한 정보에서 이상이 인지되면 관리자에게 알려주는 지능형 폐쇄회로(CC)TV를 활용, 작업 대기시간을 줄이고 열화상 등 다중 영상장치로 화재 위험을 사전에 감지해 예방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포스코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스마트팩토리 과제 321건을 수행해 총 2,520억원의 원가절감 효과를 거뒀다.
포스코의 스마트팩토리 사업 핵심 컨트롤타워는 바로 2018년 출범한 ‘스마트데이터센터’다. 이곳에서는 스마트 기술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는 작업을 하고 있다. 스마트데이터센터는 포항제철소 내 공장에 설치된 IoT 센서를 통해 얻은 빅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저장하는 곳이다. 이곳으로 모인 공장의 각종 정보들은 포스프레임에 축적되고, 데이터를 분석해 예측한 정보를 바탕으로 최적의 생산환경을 구축하는 시스템이다. 뜨거운 열과 시뻘건 쇳물이 흐르는 제철소가 아닌 여러 개의 모니터를 통해 다양한 센서 정보를 분석하는 스마트데이터센터가 제철소를 움직이는 ‘현장’인 것이다.
포스코는 이처럼 진화하고 있는 스마트 인프라를 운영하기 위해 임직원들의 역량 강화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실제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최근 “포항과 광양 양 제철소의 AI 인력을 2배로 늘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포스코는 다른 기업들처럼 IT 전공자가 아닌 철강업에 대한 지식을 갖춘 직원들을 교육해 AI 인력으로 육성하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한 사람당 약 6,000만원을 들여 매년 20~25명에게 AI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 리더는 “데이터를 축적하고 분류하는 것은 프로그램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철강업에 대한 지식과 오랜 경험은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라며 “이같이 ‘도메인’ 지식을 갖춘 직원들이 AI라는 도구로 철강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포스코의 스마트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포스코는 최근 약 3년에 걸쳐 진행했던 딥러닝(심화학습) 활용 고로 부위별 자동 제어 시스템 개발을 마쳤으며 현재는 이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는 앞으로 2고로보다 규모가 더 큰 3·4고로에 이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AI를 도구로 장착한 ‘진화한 철강인’들이 앞으로 제철 현장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포항=한동희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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