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개고기 찾는 손님들이 줄어서 아예 다른 메뉴를 팔아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에서 19년 동안 보신탕 가게를 운영해 온 이모(54)씨는 “요즘 들어 보신탕을 찾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씨는 부업으로 영양제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고, 이젠 기존에 팔던 보신탕과 삼계탕 외에 염소탕을 메뉴에 추가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을 앞두고 몰려든 손님들로 북새통을 이뤘겠지만 식당 안은 한산했다. 개고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몇 년 전부터 보신탕을 찾는 이들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복날 대표적 음식 중 하나였던 보신탕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개고기 식용을 꺼리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사철탕집’ 간판을 달고 보신탕을 팔던 가게들이 하나둘 문을 닫거나 염소·오리 등으로 아예 메뉴를 바꾸는 곳도 늘고 있다. 초복을 맞아 동물보호단체들은 국내 3대 개시장 중 유일하게 남은 대구 칠성 개시장 폐쇄 요구와 함께 개고기 식용문화를 없애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초복을 하루 앞둔 15일 휴대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서 검색된 동묘시장 인근 보신탕 가게 4곳을 직접 방문했지만 실제 보신탕을 팔고 있는 곳은 1곳에 불과했다. 유일하게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가게도 보신탕은 삼계탕 관련 메뉴들로 가득한 메뉴판 구석에 조그맣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가게 사장인 이모씨는 “오늘 총 50그릇이 팔렸는데 그중 보신탕은 4그릇 뿐이었다”며 “원래 가게 주변 골목에만 보신탕 파는 집이 6곳이 넘었는데 지금은 다 망하고 우리만 남아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3곳 중 2곳은 아예 문을 닫았고 다른 1곳도 올해 초부터 삼계탕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시장 곳곳의 허물어진 건물 앞에는 과거 보신탕 가게가 있었다는 걸 짐작케 하는 간판만 내걸려있었다. 30년 넘는 역사를 자랑하던 서대문구의 한 보신탕 음식점도 얼마 전부터 닭요리 전문점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지금은 찬밥 신세가 됐지만 보신탕은 복날이면 즐겨 찾던 서민들의 보양식이었다. 삼복더위를 뜻하는 복날의 한자 ‘복(伏)’에는 개를 뜻하는 ‘개견(犬)’자가 들어가 있을 정도다.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경동시장, 경기 성남 모란시장 등 대규모 재래시장에서는 철장 안에 갇혀있는 개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고기를 대체할만한 다른 육류 소비가 늘어난데다 반려동물 인구가 1,000만명을 넘어서고 동물권 운동까지 확산하면서 보신탕 수요 감소로 이어졌다.
이에 맞춰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던 동대문구 경동시장의 도살장을 폐쇄하고 ‘개 도살 제로 도시’를 선언했다. 동물보호단체의 거센 요구로 국내 3대 개시장 중 경기도 성남 모란시장과 부산 구포시장도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대구 칠성시장의 개 도살장을 폐쇄하라는 동물보호단체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재래시장 곳곳에 도살장이 일부 남아있지만 대도시 3대 개시장을 폐쇄하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라며 “마지막 남은 칠성시장 개시장 폐쇄를 위해 말복까지 대구시청 앞에서 1인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초복 당일인 16일에도 개 식용을 반대하는 집회가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물자유연대와 동물권행동카라는 16일 오전 청와대 앞에서 ‘개식용 금지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오후에는 평화의공원 주차장에서 드라이브스루 집회를 개최한다. 비건세상을 위한 시민모임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개는 음식이 아니라 반려동물’이라는 점을 알리는 기자회견과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심기문기자 do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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