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에 가진 것만 고집한다면 잘나가는 사업도 도태하는 데 얼마 걸리지 않습니다. 기업들이 빠르게 성장할 때 트렌드를 쫓아가려는 노력이 성장의 바탕이 됐죠.”
고제웅 랑세스코리아 대표는 16일 서울경제와 만나 ‘장수 최고경영자(CEO)’로서의 비결을 이같이 설명했다. 고 대표는 바이엘에서 분사해 랑세스코리아가 설립되던 지난 2006년부터 대표직을 맡아 15년째 조직을 이끌고 있다. 랑세스는 고성능 플라스틱과 특수첨가제 등을 생산하는 독일계 특수화학기업이다.
고 대표가 평사원으로 담당했던 제품은 염료와 농약 원료 판매였다. 고 대표는 “국내에서 우리만 해당 원료를 생산할 수 있었는데 어느 순간 중국과 인도에서 똑같은 원료를 반값, 혹은 3분의1 가격에 만들기 시작했다”며 “아무리 좋은 원료를 만들더라도 산업이 움직이면 방법이 없다는 판단에 2000년대 이후 염료 원료 사업을 접어야 했다”고 회상했다.
산업의 움직임을 민감하게 포착해야 한다는 고 대표의 생각은 랑세스코리아가 10년 뒤를 먼저 내다보고 준비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랑세스코리아가 최근 집중하고 있는 것은 ‘뉴모빌리티’ 사업이다.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 산업을 LG화학(051910)·삼성SDI(006400)·SK이노베이션(096770) 등 국내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생산시설을 보유한 랑세스와 협업해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랑세스는 전기차 경량화 및 배터리 소재, 충전 인프라용 고성능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 배터리 생산에 필요한 케미컬 솔루션을 갖추고 있다. 고 대표는 “한국 기업들이 유럽·북미 등에서 글로벌 사업을 영위하면서 글로벌 공급망을 갖춘 업체를 선호하는 경향이 높아졌다”며 “배터리 생산시설이 설립되는 주요 지역에 생산 및 연구개발(R&D) 네트워크를 보유한 랑세스는 국내 기업의 좋은 파트너”라고 말했다.
고 대표의 예민한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악재를 최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고부가·고품질 특수화학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면서 무게를 둔 소비자 보호제품의 수요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고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로 자동차 판매가 줄어 원료인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수요가 줄었지만 살균제·소독제 등의 사업을 준비해둔 것이 회사의 맷집을 단단하게 해줬다”고 전했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국내 기업들과 함께 계속 성장하는 것이 랑세스코리아의 목표다. 고 대표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가수가 노래하기까지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아티스트, 카메라와 음향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랑세스코리아도 함께 변화하고 성장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효정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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