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금융세제 개편안이 대폭 수정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개인투자자에게 주식 양도차익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는 방식이 “주식시장을 위축시키거나 개인투자자의 의욕을 꺾는 방식이 아니어야 한다”고 주문하면서 바뀐 것이다.
정부는 기본공제 기준을 국내 상장주식과 공모 주식형 펀드를 합산해 당초 2,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올리고 손실 이월공제 기간도 3년에서 5년으로 늘리면서 일명 동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요구사항을 대폭 반영했다. 다만 개인투자자들이 ‘이중과세’라며 가장 강하게 반발했던 증권거래세는 0.02%포인트를 내리는 시기만 2022년에서 2021년으로 1년 앞당겼고 폐지 로드맵은 없다며 선을 그었다.
22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0년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과 손실을 합산해 과세하는 금융투자소득이 2023년 도입된다. 종합소득·양도소득·퇴직소득과 분류되는 금융투자소득세가 신설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10억원 이상 보유한 대주주에게만 과세되는 양도소득세가 소액주주에게도 부과된다. 양도소득 5,000만원까지 기본공제를 적용하기 때문에 실제 과세 대상은 2.5%인 15만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파생상품 등 기타 금융투자소득에 대한 기본공제금액은 250만원이다. 세율은 3억원 이하까지 20%, 3억원 초과분부터 25%다. 손실이 발생해도 5년까지 이월공제를 허용하기로 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과 함께 펀드(집합투자기구) 과세체계도 개선했다. 펀드 내 상장주식 손익에 대해서도 세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펀드 내 자산형태에 따라 과세 여부가 달라 전체적으로 손실을 보고도 세금을 내는 경우가 있었다. 예를 들어 A펀드를 통해 채권으로 20만원을 벌고 주식으로 100만원을 잃었어도 상장주식은 비과세이기 때문에 채권양도소득에 대해 과세가 됐다. 모든 손익을 과세 대상에 포함해 전체적으로 손실이 나면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금융투자소득에 포함되는 범위 안에서는 펀드 간이나 다른 투자소득과도 손익 통산이 가능하다. 당초 발표안에서는 펀드에 대해 기본공제를 제공하지 않았지만 이번 세법개정안은 공모 주식형 펀드에 대해서도 상장주식과 동일한 기본공제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당초 논란이 일었던 원천징수 기간도 월별에서 반기(6개월)별로 늘렸다. 기존에는 금융회사별로 금융투자상품 손익 양도세를 매달 잠정 통산한 후 먼저 원천징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 경우 합산 손실이 발생해도 다음해 5월 국세청 세액 확정신고 이후에나 환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돌려받기까지 해당 금액만큼 투자를 할 수 없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에 매달 징수하기로 했던 원천징수액을 반기마다 걷기로 하면서 이러한 문제를 개선했다.
금융투자소득 도입과 주식 양도소득 과세 시행에 맞춰 증권거래세는 2021년에 0.02%포인트, 2023년에 0.08%포인트 인하하기로 했다. 앞서 이중과세 논란으로 증권거래세를 폐지하라는 개인투자자의 요구가 있었으나 0.02%포인트 인하 시점만 1년 앞당겼다. 증권거래세가 0.1%포인트 인하될 경우 유가증권시장(코스피)은 농어촌특별세 0.15%, 코스닥시장과 비상장주식에 대한 증권거래세는 각각 0.15%, 0.35%로 유지된다. 기재부는 증권거래세 폐지 계획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1년에 0.02%포인트, 2023년에 0.08%포인트 낮추는 것까지만 결정돼 있다”고 답했다.
정부는 만능통장으로 불리는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를 국민 재산 증식을 위한 대표적인 금융상품으로 육성하기 위해 만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었다. 자산운용 범위에 상장주식을 포함하고 계약자가 자율적으로 기간을 정할 수 있게 하는 등 요건 완화에 나섰다. 전년도 미납분에 대한 이월납입도 허용하고, 세제지원도 항구적으로 적용한다.
이날 정부는 세법개정안을 통해 공익법인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정부는 공익법인이 기부금 등을 공익목적에 활용할 수 있도록 관리 방안을 마련했다. 우선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을 운용해 얻은 이자·배당소득에 대해서는 매년 공익목적에 써야 하는 최소비율을 70%에서 80%로 상향 조정했다. 또 공익법인이 출연받은 재산가액의 1% 이상을 매년 공익목적에 사용하지 않았을 경우 주식 5% 초과 보유분에 대해 증여세를 추가로 추징하기로 했다. 기존에 부과하던 미달 사용액의 10%에 달하는 가산세도 함께 책정한다. 발행주식 총수의 5%를 초과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공익법인은 과세관청에 매년 의무이행 여부를 신고해야 한다. 법인세법상 법정·지정기부금단체, 소득세법상 기부금 대상 민간단체, 상속세 및 증여세법상 공익법인·성실공익법인 등 명칭을 ‘공익법인 등’으로 합치기로 했다. 똑같은 단체를 세법마다 다른 명칭으로 불러 발생하는 불필요한 혼란을 막기 위해서다.
/세종=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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