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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유동성은 죄가 없다

조지원 경제부 기자





“나중에 한국은행 때문에 집값 올랐다고 할 까봐 걱정이네요.”

정부가 6·17부동산대책에 이어 7·10대책을 준비할 즈음 만난 한국은행의 고위 인사는 집값 상승 책임이 한은에 전가될 것을 심각하게 우려했다. 당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잠잠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초저금리 기간이 집값 상승 시기와 맞물려 부동산가격 상승의 가장 큰 책임이 한은에 있다는 목소리가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의 짐작은 코로나19가 끝나기도 전에 현실화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23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집값 폭등에 대한 질문에 “전 세계적으로 유동성이 과잉공급되고 최저금리 수준이 지속하면서 상승 국면을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고 답했다. 집값을 잡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 다양한 규제들을 내놓았지만 유동성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핑계다. 정부는 그간 다주택 투기꾼들이 부동산가격 상승의 주범이라며 각종 세금 폭탄을 쏟아냈는데 이제는 유동성이라는 새로운 희생양을 등장시킨 것이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유례없는 경제위기에 세계 각국이 기준금리를 대폭 낮춰 돈이 시중에 많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이로 인해 급등한 증시로 고공행진하고 있는 자산시장과 바닥을 기는 실물경제 간 괴리가 전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된 것도 맞다.



하지만 금리를 내린 모든 나라가 비정상적으로 집값이 오른 것은 아니다. 미국은 한국보다 기준금리가 0.25~0.5%포인트 낮지만 뉴욕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아파트 매매가격이 20% 안팎 하락했다.

한국에서 집값이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은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도가 낮기 때문이다. “집값은 안 떨어진다”고 공언하는 여당 의원이나 강남 대신 고향 집을 파는 청와대 비서실장을 보면서 2030세대는 대출도 안 되는데 ‘패닉 바잉(집값 폭등을 우려한 매수)’에 나서고 있다.

시중에 풀린 돈이 늘어 부동산 시장에 불쏘시개가 많다고 주무장관이 유동성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홍수 피해 책임을 그저 강수량에 전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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