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추심자가 개인 채무자에게 주 7회 넘게 연락하는 게 금지된다. 채무자가 빚 갚는 게 어렵다고 판단하면 금융회사에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최근 금융당국이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데 따른 조치지만 당장 업계에서는 채무자의 모럴 헤저드를 부추기고 결국 연체율이 오를 수 있어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9일 ‘제9차 개인연체채권 관리체계 개선 태스크포스 확대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소비자신용법안을 논의했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10월 TF를 구성해 개인과 금융기관 간 대출 전 과정에 걸쳐 공정한 원칙을 수립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해왔다. 이번에 마련된 소비자신용법은 연내 설명회를 거쳐 내년 1·4분기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소비자신용법의 핵심은 개인 채무자와 채권금융기관 간 사적 채무조정을 활성화하고 개인 채무자의 과도한 추심부담을 완화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개인채무자의 채무조정요청권 도입을 추진한다. 개인 채무자가 스스로 빚을 갚기 어렵다고 판단한 경우 채권금융기관에 채무 조정을 요청하는 권한이다. 채무자는 소득, 재산현황 등 상환의 어려움을 입증하는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채권금융기관은 추심을 중지하고 10영업일 내 채무조정안을 마련해 제안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채무자가 금융사와의 협의 과정에서 높은 협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채무조정교섭업도 도입한다. 금융사와 채무자 사이에서 채무조정요청서를 작성하고 제출해주는 등 업무를 대신해주는 역할을 맡는다.
개인채무자의 과도한 연체, 추심 부담도 완화된다. 현재는 기한 이익이 상실되면(만기 전 채권 회수하는 경우) 원금 전체를 즉시 상환해야 하고 상환하지 못할 경우 원금 전체에 약정이자와 연체가산 이자가 부과된다. 상환기일이 도래한 원금에만 연체가산 이자를 부과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막는다. 또 금융기관이 회수 불능으로 판단해 상각한 채권을 제3자에게 양도한 경우 더 이상 이자가 증식되지 않는다.
아울러 전화나 문자, 방문 등 과도하게 연락해 빚을 갚으라고 독촉하는 행위도 제한된다. 대표적으로 채권추심자가 일주일에 7회 넘게 채무자에게 추심 연락하는 게 금지된다. 한번 연락으로 상환능력을 확인한 경우 7일간 재연락하는 것도 막힌다. 채무자가 특정 시간대, 특정 방법 수단으로 추심연락을 하지 않도록 요청도 가능하다. 가령 채무자가 화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연락 제한을 요청하면 추심자는 이때를 제외한 다른 요일, 시간대에 연락해야 한다.
이같은 내용의 소비자신용법을 추심업자가 위반할 경우 추심업자뿐만 아니라 원채권을 보유했던 금융사도 함께 손해배상책임을 져야 한다. 금융사가 채권추심업자에게 채권을 매각한 후에도 책임을 부과한 셈이다. 금융사가 채권을 양도하거나 추심을 위탁하는 추심업자를 선정할 때도 채무자 보호를 위한 전반적인 평가를 하도록 규정했다.
금융당국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연체부담이 급증하게 되면 상환 의지가 꺾인 채무자는 장기연체자로 전락하게 된다”며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채무자가 잠적 도피하고 결과적으로 채권금융기관은 회수 없이 관리비용만 증가하는 비생산적인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당장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현재도 채권 추심은 하루에 두번만 빚 독촉을 할 수 있는 등 제한이 있는 상황에서 규제가 추가돼 사실상 채권 추심이 어렵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채권추심회사와 금융사가 같이 불법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되면서 금융사가 채권추심회사에 채권을 양도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연체 채권을 매각하는 게 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고 보고 있다”며 “이대로 제도가 시행되면 연체율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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