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는 13일(현지 시각) 소프트뱅크와 세계 최대 반도체설계회사 ARM을 400억달러(47조5,000억원)에 인수하기로 최종 합의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의 인수합병(M&A) 금액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는 “AI는 우리 시대 가장 강력한 기술력으로 새로운 컴퓨팅 바람을 일으켰다”며 “ARM과 엔비디아 조합은 AI 시대에 걸맞는 훌륭한 회사를 만들 것”이라고 인수 소감을 밝혔다
2016년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비전펀드를 통해 총 320억달러(38조원)를 주고 ARM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이 때까지만 하더라도 엔비디아와 ARM의 몸집은 비슷했다. 하지만 엔비디아가 몸집을 10배 이상 빠르게 늘리면서 어느새 TSMC, 삼성전자(005930)에 이은 세계 3위 반도체 회사로 급성장했다. 엔비디아는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게임과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확충 수요 확대로 수혜를 봤다. 차세대 먹거리인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에도 GPU 탑재량이 늘며 미래 전망도 밝다. 반면 ARM은 매출이 그대로인데다 소프트뱅크가 연이은 스타트업 투자 실패를 겪으며 결국 시장에 매물로 나오게 됐다.
이번 400억달러 매매가 공식화하면서 손 회장은 4년 만에 약 80억달러(9조5,000억원)에 이르는 차익을 거두게 됐다.
반도체 업계를 뒤흔들 공룡의 탄생에 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ARM은 반도체 업체에 CPU 반도체 기본 설계도를 판매하는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 AP, 서버용반도체, AI 반도체 등 다양한 제품군을 망라한다. 지난해에만 ARM 설계도를 활용해 만들어진 반도체가 230억개다. 누적으론 1600억개를 자랑한다. 엔비디아가 이런 ARM을 인수하며 CPU와 GPU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갖게 된 것이다. 마치 과거의 인텔이 누린 지위를 가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삼성, 애플, 퀄컴 등 스마트폰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들에 대한 영향은 어떨까. ARM은 그동안 반도체 설계 외엔 제조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 ‘중립성’ 덕분에 그 많은 제품 설계들을 수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조능력이 있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하며 향후 삼성, 애플, 퀄컴 등 고객사들에겐 약간 껄끄러운 존재가 됐다.
하지만 엔비디아는 최신 GPU 물량을 삼성전자에 맡기면서 적에서 협업관계로 바뀌었다. 삼성전자가 경쟁사이긴 해도 업계 큰 손인 만큼 향후 이 관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기술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필요한 제품들이 다양해지면서 반도체 회사들이 영위하는 사업군이 다양해지고 있다”며 “장기적인 미래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중요하지만 당장 시장에서 원하는 제품을 만들어서 내놔야 하는 필요가 커 서로 합종연횡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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