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 실거주 용도로 서울 중랑구의 아파트 한 채를 매수한 30대 A 씨. 임대차 3법 시행으로 현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면 집을 사는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계약 전 매도인(현 집주인)을 통해 세입자의 퇴거 의사를 꼼꼼하게 확인했다. 하지만 얼마 전 갑자기 세입자가 “법을 잘 몰랐다”면서 청구권을 사용하겠다고 돌연 태도를 바꿨다. 며칠 동안 매도인과 함께 세입자 설득에 매달렸지만 세입자는 연락을 받지 않고 아예 ‘잠수’를 타버렸다. A 씨는 실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고 집주인에게 계약 파기를 요구했다. A씨는 계약 파기의 책임을 물어 계약금의 두 배 배상을 요구했지만 집주인은 계약 해지는 들어주겠다면서도 “세입자가 말을 바꾼 걸 확인하지 않았나. 배상은 불가능하다”고 버티고 있다.
임대차 3법 시행 후 임대차 시장의 대혼란이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특히 정부도 사실상 손을 놓아버린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이 가능한’ 세입자가 낀 거래에서는 매도인-매수인 모두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는 모습이다. 이로 인한 계약 파기가 빈번히 발생하면서 배액 배상 책임을 두고 매매 당사자들끼리 분쟁을 벌이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23일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근 이 같은 부동산 매매계약 파기에 따른 다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A씨 사례처럼 세입자가 말을 바꿔 정상적인 거래가 어려워지면서 계약이 파기되고, 이에 대한 배액 배상 책임을 묻는 식이다.
계약이 일방의 책임에 의해 파기되면 민법상 그때까지 오고 간 금액의 두 배를 배상해야 한다. 만약 집주인이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실거주 매수자에게 거짓말을 해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가 이로 인해 계약이 파기된다면 배액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문제는 이처럼 세입자가 분명히 약속을 했다가 말을 번복한 경우다. 정부 해석에 따르면 세입자가 ‘청구권 포기’ 약속을 한 뒤 이를 번복할 경우 집주인의 계약 거부가 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세입자가 “법을 몰랐다”거나 “청구권을 포기한다고 약속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꾸고 나서면 명확한 해법이 없다.
정부 관계자는 “분쟁조정위의 조정을 받는 것이 최선”이라고 하고 있지만, 분쟁조정위 조정에 강제성이 없고 시간이 오래 걸려 당장 실거주를 해야 하는 매수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매수자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새 매물을 알아보기 위해 계약을 해지하는 쪽이 더 유리한 상황이다.
이 경우 매수인은 계약 해지의 책임이 매도인에게 있는 만큼 배액 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매도인인 집주인 입장에서는 말을 바꿔 계약을 깨뜨린 가장 큰 책임은 세입자에게 있는 만큼 역시 억울한 입장이다. 이 같은 이유로 세입자의 변심에 따른 계약 해지의 경우 매도인과 매수인이 서로 책임소재를 묻지 않고 계약 해지를 하는 경우도 많다.
법조계에서는 이와 관련한 배액배상 책임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매수인 입장에서는 주택 매매 계약을 통해 잔금을 치르는 날 계약 이행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라며 “별도 특약이 없는 한 매도인이 정상적인 인도하지 못하면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신 세입자의 ‘말 바꾸기’로 인한 문제라면 세입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변호사는 “그렇지만 법이 워낙 불명확하게 돼 있고 판례가 없다 보니 어떻게 판단이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했다. 반면 정인국 법무법인 한서 변호사는 “세입자가 청구권을 사용할 수도 있을 상황이란 것을 매수인이 알고 있었다면 배상책임이 오히려 매수인에게 있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갈등의 근본적 책임이 설익은 정책 탓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예전 같으면 발생하지 않을 분쟁이 계속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며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적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의 신뢰는 다시 수습하기 어려운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고 비판했다./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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