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밸류에이션(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국내 증권가의 고민이 커지는 가운데 기업의 성장 스토리와 기존 재무 데이터 중심의 기업가치 평가를 연결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정보기술(IT)·바이오 등 무형자산 중심 성장주에 이목이 쏠리고 이들의 주가수익비율(PER) 등이 고평가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재무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정 주가를 산정하는 기존 기업가치 평가 방법론에 대해 고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신한금융투자는 최근 ‘무형시대 0>1’이라는 396쪽 분량의 분석 보고서를 발간했다. 내러티브(서사), 확률분포 등 무형자산 밸류에이션 관련 논의들을 소개한 것이 골자다. 이 보고서에서 신한금융투자는 애스워드 다모다란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의 저서 ‘내러티브 앤 넘버스’를 인용해 기업 성장 스토리 기반의 밸류에이션 방법론을 소개했다. “좋은 기업가치 평가는 숫자와 스토리를 연결했을 때 나타난다”는 것이 책의 골자다.
가령 대부호를 주요 고객으로 삼는 페라리의 경우 ‘배타성’을 주요 내러티브 키워드로 삼아 낮은 매출성장률, 높은 영업이익률, 낮은 자본비용 등의 재무 데이터를 연결짓는 식이다. 신한금융투자는 “다모다란 교수는 ‘정해진 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러티브와 가치평가 모델의 구조에 따라 유연한 틀을 만들 수 있다’고 언급했다”고 설명했다.
‘내러티브 앤 넘버스’는 최근 증권가에서 종종 거론되는 책 중 하나다. 재무 기업가치 평가 이론에서 세계적인 권위자로 통하는 다모다란 교수가 직접 ‘스토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상징성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SK증권 역시 다모다란 교수의 논의를 바탕으로 “저금리 시기에는 먼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내러티브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해오고 있다. 각국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자본비용, 나아가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율이 낮아지면서 앞으로의 기업 전망을 뒷받침할 ‘스토리’의 중요성이 더 높아졌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확산 이후로 기존의 밸류에이션 방법론에 대한 증권가의 고민이 깊어진 영향이 컸다. 코로나19 이후 철강·조선 등 유형자산 중심의 산업이 매력도가 떨어진 가운데 비대면·바이오·2차전지·친환경 등 신산업 성장주에 돈이 쏠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PER 등 기존 밸류에이션 지표의 활용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는 우려도 나왔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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