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수업 도입이 확산하면서 교육 당국이 이를 뒷받침할 디지털 인프라 확충에 나선다. 하지만 해당 인프라 사업에 대기업 지분참여를 지나치게 제한하는 등 현실을 외면한 입찰 조건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디지털뉴딜 효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가 반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 관계당국 등에 따르면 교육부는 총 3,707억원을 투입하는 전국 초·중·고교 초고속 와이파이 무선망 사업을 진행하면서 대기업 참여와 국산화율에 대해 엄격한 제한 조건을 다는 방향으로 조달입찰을 추진하고 있다. 복수의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입찰에 참여하도록 유도하되 컨소시엄 내 대기업 지분을 30% 이내로 제한하고 컨소시엄의 대표사는 가급적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이 맡도록 하는 내용이다. 또 와이파이를 구현하게 해주는 인터넷 무선접속장치(AP)는 50% 이상의 국산부품을 사용한 제품으로 국한하는 것이 추진된다.
이 같은 제한조건은 사상 최대 규모의 학교 와이파이 구축사업을 통해 가급적 많은 중소기업들에게 응찰기회를 주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한 당국자는 “컨소시엄에 각 학교 소재 지역의 중소기업이 많이 참여할수록 더 많은 점수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안다”며 “이를 통해 지역 중소기업들도 국가 재정사업의 낙수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차원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산업계 평가는 엇갈린다. 대·중소기업이 함께 상생하도록 하겠다는 정책 취지는 좋지만 대기업 지분 제한이나 국산화율 조건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것이다. 한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관계자는 “컨소시엄 대표사를 중소기업이 맡고 대기업 지분을 제한하더라도 중소기업은 통신망이나 장비의 품질관리를 할 인력과 기술을 충분히 갖추지 못해 결국 대기업이 품질관리를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면 대기업 참여 지분율을 최소 40~50%까지는 허용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ICT업계의 지적은 한국교육방송공사(EBS)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코로나19 여파로 진행된 온라인개학을 뒷받침할 원격교육서비스인 EBS의 ‘온라인클래스’는 수백만 명이 동시 접속하며 접속 대란을 일으켰다. 해당 서비스를 관리하는 중소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EBS는 결국 대기업인 LG CNS에 긴급 도움을 청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국산화율 역시 보다 조건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와이파이 관련 제품 제조사는 “AP 등을 제조하는 국내 기업 중 상당수가 인건비 문제로 중국 등 해외에서 생산하고 있다”며 “이번 와이파이망 사업입찰의 조건이 ‘부품 국산화율 50% 이상’으로 제한되면 정작 참여할 수 있는 기업들이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만 대부분의 기술과 부품을 국산화하는데 성공한 기업들도 있는 만큼 국산화 투자노력을 기울인 업체들에 좀 더 입찰 가점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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