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적 인수합병(M&A) 열풍이 불던 지난 1980년대 대중 미디어 기업이었던 ‘타임’은 유명 영화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와 주당 70달러의 가격에 합병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이때 워너브러더스의 경쟁사였던 ‘패러마운트’가 세 배에 가까운 가격에 타임 인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타임 이사회는 패러마운트의 제안을 거부했으며, 패러마운트는 델라웨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결과는 타임의 승리였다. 주주 입장에서 보면 패러마운트와의 합병이 매력적인 선택지이지만, 장기적으로 비슷한 기업 문화를 가진 워너브러더스와 합병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타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타임이 워너브러더스와 합병할 경우 워너가 가진 국제 배급 시스템을 이용해 영화·비디오·도서·잡지 등 분야를 확장할 수 있어 장기적인 경영 측면에서 낫다는 것이 이사회의 주장이었다. 당시 법원은 “이사회가 단기적인 주주 가치를 극대화할 의무를 지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기업 지배구조의 힘이 어디서 기반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오해에서 비롯됐다”며 “주주들이 정당하게 선출한 이사회 대표에게 경영권이 위임됐다”고 분석했다.
‘패러마운트 대 타임’ 판결을 저서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소개한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기업이 주주 가치에 종속되지 않는 기업 문화를 가질 수 있는 사회적 실체라는 사실을 확립한 판례”라고 평가했다. 기업의 주인은 기업 자신이며, 기업이 추구하는 목표는 법인이 결정할 사안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판례라는 것이다./전희윤기자 heeyou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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