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가 빠르게 늘며 한국 경제에 또 다른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가계부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부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거론됐는데, 코로나 위기 대응에 한눈 팔린 사이 어느 샌가 다시 불이 붙을 위기입니다. 늘어난 가계대출이 부실로 이어질 경우 코로나19 사태와는 또 다른 경제 위기가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먼저 가계대출 증가율이 심상치 않습니다. 올해 2·4분기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637조3,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2%(80조5,000억원) 늘었습니다. 가계신용 증가율은 지난해 3·4분기 3.9%까지 떨어졌다가 4·4분기 4.1%, 올해 1·4분기 4.6% 등 점차 확대되는 추세입니다. 신용카드 이용금액 등 판매신용을 제외한 가계대출 잔액도 비슷한 추이를 보입니다.
가계대출 증가세는 3·4분기(7~9월)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13일 한은이 발표한 금융시장 동향을 살펴보면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9월 기준으로 957조8,801억원으로 한 달 만에 9조6,242억원 늘었습니다. 9월 기준으로만 보면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후 가장 많은 증가액이고, 전체 기록으로 살펴봐도 지난 8월(11조7,000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준입니다. 제2금융권 가계대출도 1조1,000억원 늘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지속되면서 갈수록 위기감도 커지고 있습니다. 한은이 국내 금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출행태서베이 결과를 살펴보면 국내은행들은 기업과 가계의 모든 대출에서 신용위험이 증가할 것으로 봤습니다. 특히 가계는 저신용·저소득층 등 취약차주를 중심으로 신용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제2금융권에서도 신용위험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상호저축은행의 신용위험지수는 차주의 채무상환능력 저하 우려 등으로 지난해 3·4분기 8에서 올해 3·4분기 25로 늘었습니다.
한은이 최근 국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다중채무자(3건 이상 금융기관 차입)이면서 저소득(소득 하위 30%) 또는 저신용(7~10등급)자인 취약차주의 대출규모는 올해 2·4분기 81조3,000억원으로 전체 가계대출에서 5.3%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지난해(85조2,000억원)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2015년(73조5,000억원)이나 2016년(78조5,000억원)에 비하면 큰 수준입니다.
특히 원리금상환 부담이 크고 자산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이 어려운 고위험가구 증가 속도가 무섭습니다. 고위험가구 수는 2015년 29만9,000가구에서 2017년 32만4,000가구, 2019년에는 37만6,000가구까지 증가했습니다. 금융부채 규모도 2015년 46조8,000억원에서 2019년 78조5,000억원으로 급증했습니다. 정부는 코로나19라는 비상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내년 3월까지 대출·이자 상환을 유예했는데 이 기간이 끝나면 연체율이 급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이주열 한은 총재는 지난 14일 금융통화위원회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어느 정도 가계부채 증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우리나라 가계부채 수준이 이미 높은 상황에서 최근 증가세가 더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도 “신용대출을 비롯한 가계대출 추이를 모니터링하며 가계대출 불안 요인이 지속될 경우 필요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가계대출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앞으로는 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미 은행권은 신용대출 금리를 높이고 한도를 낮추는 방식으로 대출 관리에 돌입했습니다. 올해 4·4분기 국내은행의 전반적인 대출태도가 가계대출 중심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다만 서민 대출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신용대출을 받아 부동산·주식에 투자할 수도 있지만, 생계자금으로 쓸 가능성 또한 높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지금까지 선뜻 대출 규제에 나서지 못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이 대출이 막혀 제2금융권이나 대부업체를 찾지 않도록 하면서도 무섭게 늘어나는 가계대출을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제로 보입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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