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현대차는 수소승용차 넥쏘와 수소버스 일렉시티FCEV를 사우디아라비아에 수출했다. 수입자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화석에너지에서 재생에너지로 바뀌는 에너지 전환의 시점에 오일 공룡 아람코는 수소를 선택했다. 수소경제가 탈탄소 시대 산유국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홍해 인접 지역에 5,000억달러, 약 580조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들여 조성 중인 신도시 ‘네옴(NEOM)’에는 대규모 수소 생산기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글로벌 수소 공급사인 미국 에어프로덕츠와 사우디아라비아 발전·담수화 회사 ‘아쿠아파워(ACWA)’는 올 7월 네옴에 50억달러(약 6조원) 수소 기반 암모니아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내용의 계약서에 최종 서명했다. 이로써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는 하루 650만톤의 수소를 뽑아내는 대규모 수소 생산국 반열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지난해 6월 사우디 아람코는 본사가 위치한 다란테크노밸리 사이언스파크에 사우디 최초로 수소충전소를 세우고 지난달 현대차와 수소차 넥쏘와 수소버스 일렉시티FCEV를 수입하는 계약을 맺는 등 사우디의 수소경제 행보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
중동 ‘오일머니’의 핵심인 사우디의 이 같은 변신은 세계 에너지 패러다임이 화석연료에서 수소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산유국 역시 점차 저물어 가는 오일 패권뿐 아니라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세계적 ‘탄소 감축’ 기조까지 맞물려 석유 외 새로운 에너지 자원 개발에 필연적으로 나서야 했고, 기술과 설비만 갖추고 있으면 비교적 생산이 쉬운 수소가 대안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임희천 한국수소산업협회 부회장은 “전력과 수소에너지 시스템을 융합하면 자원 고갈을 방지할 수 있고 탄소 감축에 따른 환경 보전이 가능하며, 자국 생산능력을 높이면 에너지 안보를 지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각국은 에너지 안보 확보 차원에서 수소전략을 펴고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2018년 기준 86%로 매우 높은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은 자국에서 사용하는 석유의 87%를 중동에서 수입할 정도로 에너지 안보가 취약한 국가로 꼽힌다. 이에 더해 내년 발표될 예정인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현재의 80% 이하로 줄인다는 방침을 발표한 상황이다. 따라서 일본은 탄소 저감과 동시에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는 방안으로 2017년 말 ‘수소기본전략’을 채택했고 지난해 3월 이를 수소·연료전지 전략 로드맵으로 발전시킨 상태다. 해당 로드맵에 따르면 일본은 수소 가격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수소 공급 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큰 틀에서 수소 공급망 개발과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수소 생산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또 저비용 수소 조달·공급을 실현하기 위해 탄소포집·저장(CCS) 기술을 활용해 해외 미이용 에너지에서 수소를 생산해 저장·운송하는 공급망을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10년 뒤인 2030년 ‘수소 자립화’를 이룬다는 것이 목표다.
일본의 사례는 역시 에너지 의존도가 90% 이상으로 매우 높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81년 75%였던 한국의 에너지 의존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해 1991년 최초로 90%를 넘어선 뒤 현재까지 이를 유지하고 있다. 9월 말 현재 국내에 수입된 원유 가운데 77%가량은 사우디와 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UAE) 등 중동발(發)인 만큼 한국 역시 에너지 안보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향후 과제는 생산능력 확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모빌리티와 발전용 연료전지 등 수소 활용 측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소 생산 및 공급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뒤처져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이달 18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한국이 조기에 대외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그린수소 관련 원천기술 개발과 인프라 구축에 집중적으로 투자해 그린수소 생산량을 늘리고 생산단가를 절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그린수소 연구개발(R&D) 지원을 확대하고 국책연구원뿐만 아니라 국내외 민간연구기관의 참여도 적극적으로 장려해야 한다”면서 “석유화학이 발달한 만큼 수소를 액상 암모니아 화합물로 변환하는 방식을 사용하면 기존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유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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