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이건희의 디테일 경영 "공장 화장실 日 호텔 수준으로 만들라"

■일화로 되돌아본 이건희 경영철학

"직원들 용변도 해결 못해주는데

좋은 품질 어떻게 나오나" 질타

매장 뒤편에 밀린 '삼성제품' 보고

사장단 LA 집합 "百 쇼핑해보라"

"반도체는 두뇌, 배터리는 심장"

미래 혜안으로 선제적 투자 결실

이건희(왼쪽)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003년 10월 1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차세대 메모리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회장은 품질을 강조하는 디테일, 인재중시, 미래경영 등 한국기업에 새로운 경영철학을 남겼다. /연합뉴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별세했지만 그가 대한민국 기업과 사회에 남긴 철학은 영원히 남는다.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 사소한 것에서 배움을 얻는 겸손,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 이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오랜 시간 지켜본 지인들은 고인의 삶을 3개의 짧은 문구로 표현했다. 그가 남긴 일화와 에피소드에는 묵직한 경영철학이 오롯이 녹아 있고, 그의 말 한마디에는 앞을 내다보는 투시력이 담겨 있다.

디테일을 파고든 화장실 경영 철학



이 회장이 1980년대부터 공장을 방문할 때마다 화장실을 점검한 것은 특이한 대목이다. 당시 삼성그룹 부회장이었던 이 회장은 수원 공장을 방문해 화장실을 둘러보던 중 곳곳에 신문지가 널브러져 있고 위생상태가 불량한 것을 보고 “용변은 인간의 가장 기본 욕구인데, 이를 제대로 해결해주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품질을 바라겠냐”며 불같이 화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오쿠라호텔 수준으로 화장실을 만들라’는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1990년대 중반부터 삼성 전 계열사 사업장 화장실은 비데가 설치되는 등 고급화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사람이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화장실 환경을 지나치지 않고, 직원들의 인간적 삶과 제품의 품질을 보장해야 한다는 이 회장의 철학이 드러난 사례다. 도로공사는 이 회장의 화장실론을 벤치마킹해 전국 고속도로 휴게실 화장실을 혁신하기도 했다.

1993년 이 회장은 삼성 주요 사장단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소집하기도 했다. 영문도 모른 채 LA에 모인 경영진에게 이 회장은 “백화점과 가전제품 매장을 돌며 쇼핑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삼성 제품이 ‘싸구려 제품’처럼 매장 뒤편으로 밀려나 있고 일본 소니 제품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을 목격한 이 회장이 그 참담함을 직접 느껴보도록 사장단을 불러낸 것이다. 그 자리에서 이 회장은 삼성과 타사 제품 간 리모컨 온오프 버튼 위치, 배선 상태 차이의 이유를 사장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 회장의 비서실장을 지낸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은 이 회장에 대해 “문제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집념과 노력이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배움을 추구하는 불치하문 (不恥下問) 리더십





이 회장은 격식과 체면을 따지지 않고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한 리더로 평가받는다.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고 말한 이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일명 ‘후쿠다 보고서’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이 발단이 됐다. 1989년 일본에서 스카우트해온 후쿠다 다미오 고문이 쓴 ‘후쿠다 보고서’에는 그가 제안한 의견이 삼성 조직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분석이 담겨 있었다.

후쿠다 고문은 ‘상품을 디자인할 때 A안, B안, C안이 출발부터 개념이 다른데도 삼성의 윗사람들은 적당히 섞어서 제품을 만들라고 지시한다’고 밝혔다. 또 ‘비용을 많이 들이면 누구나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있다’는 식의 임원들의 발언도 담겼다. 이 같은 보고서에 충격을 받은 이 회장은 사장단을 불러모아 “양에서 질로 바꾸자”며 ‘신경영’을 선포했다. 이후에도 이 회장은 다양한 문화를 몸소 체험하며 배움을 실천했다. 최성래 전 삼성그룹 비서실장은 이 회장이 “우리가 일류 기업, 일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자주 말했다”며 “유럽에 자주 가는 이유도 유럽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직접 체험해봐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미래를 준비하는 과감한 결단력



미래 시장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비롯해 이 회장의 과감한 결단력은 삼성전자를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배터리 사업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던 1998년 이 회장은 “배터리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시기가 머지않아 온다”며 천안 배터리 공장에 3,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외환위기로 대부분 국내 기업들이 경영활동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비용을 최대한 절감하려고 하던 시기에 내린 통 큰 결정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전기 등 서로 다른 계열사로 분산돼 있었던 사업을 삼성SDI로 일원화해 배터리 개발에 본격 착수했다. 소형 배터리 사업에 주력하던 삼성은 본격적인 사업 시작 10년 만인 2010년 소형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에 등극하는 쾌거를 이뤘다. 반도체는 머리요, 디스플레이는 눈이요, 배터리는 심장이라고 설파한 그의 혜안이 오늘날의 삼성 배터리를 잉태시켰다.

‘위기’와 ‘변화’를 줄곧 강조해온 이 회장은 경영인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해 삼성을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키우는가 하면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온다”며 휴대폰 시장의 호황을 예견하는 선견지명을 보였다. 그 결과 삼성전자가 선보인 애니콜은 1995년 전 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전희윤·한재영기자 heeyou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