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이혼의 자유를 확대하는 ‘파탄주의’에 대한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파경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의 이혼청구권을 보장하는 파탄주의에 대한 논의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어서 현실화할 경우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는 지난 26일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에 관한 실증적 연구’ 용역 사업을 발주했다. 그동안 우리 법원은 이혼과 관련해 불륜 등 부부생활 파탄의 원인을 제공한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한 ‘유책주의’를 원칙으로 삼았는데 대법원이 처음으로 파탄주의에 대해서도 연구 필요성을 제시한 것이다. 파탄주의는 특정 배우자의 잘못과 상관없이 부부생활이 파탄에 이를 정도로 어려울 경우 부부 중 누구나 이혼을 청구할 수 있고 법원이 이를 인정해주는 원칙을 말한다. 미국과 유럽 등 상당수 선진국에서는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위자료나 재산분할에서 유책 배우자에게 불리함을 줘 파경의 책임을 지게 한다.
관련기사
대법원의 이번 연구 용역은 이혼에 대해 달라진 국민의 의견을 조사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해외 사례가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 국민들이 이혼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알아보자는 것”이라며 “여론조사 등 다양한 방식을 진행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5년 관련 이혼 사건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7대6의 표결로 유책주의를 강조한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는데 해당 판결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국민 여론을 다시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대법원 관계자는 “당장 파탄주의를 판결에 도입해 이혼의 자유를 확대하자는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종적으로 법원이 파탄주의를 도입하게 되면 국내 이혼 재판은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지금까지는 파경 사유를 만든 배우자의 이혼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법원이 파탄주의 해석을 받아들이게 되면 당사자의 책임 유무를 떠나 혼인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 이혼 청구가 법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어 재판 흐름이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배우 김민희와 불륜을 저지르고 배우자에게 이혼을 요구했지만 법원의 청구 기각으로 이혼에 실패한 홍상수 영화감독도 최종적으로 이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파탄주의 도입과 관련해 대법원은 사회적 약자 보호도 염두에 두고 있다. 법원의 이혼 해석 변경으로 파경이 늘어날 경우 이혼당한 배우자를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규정이 미비한 상황에서 남겨진 자녀 등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파탄주의 도입 시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보호할지도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며 “법원뿐 아니라 민법 개정 등 국회의 뒷받침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