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쳐나는 시중 자금이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급격히 몰리고 있다. 부동산으로 몰리던 자금들이 정부의 강력한 규제대책 등으로 비상장 벤처가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이나 자율주행차량, 바이오 등과 같은 유망 벤처에는 투자하겠다는 자금이 쇄도해 새로운 쏠림 현상을 우려할 정도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분위기다.
1일 한국엔젤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올 들어 결성된 개인투자조합 수는 1,170개로 이미 지난해 전체인 980개를 넘겼다. 개인투자조합은 성장성이 높은 유망 벤처인증기업에 개인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일정 기간 동안 투자를 해서 그 수익을 나눠 갖는 제도다. 49인 이하 개인이 1억원 이상 투자 조합을 결성하는 것인데 일종의 사모펀드다.
개인투자조합 수가 늘었다는 것은 벤처기업 투자에 나선 개인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투자조합 결성 금액도 7,813억원으로 작년 한해 총액(1,260억원)보다 많다. 지난 2016년과 비교하면 조합 수는 5.5배, 결성 금액은 6.9배 급증했다. 업계 관계자는 “부동산 전망은 암울하고, 주식은 급등락 변수가 많아 투자가 만만치 않다”며 “비상장 벤처투자는 잘 하면 1,000% 수익률도 가능하다는 소문이 나면서 1억원씩 유망 벤처에 분산투자해 놓는 개인 자산가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전에는 상장전 지분투자(프리 IPO)가 대세였다면 최근에는 창업 초기 단계 투자가 대세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IPO전에도 기업가치가 급등하면 투자 단계마다 언제든지 이익회수(exit·엑시트)가 가능해서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는 “통상 시리즈A나 B 등 초기 단계서 투자를 하게 되면 엑시트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요즘에는 (벤처나 스타트업의) 초기 단계에 투자했다가 VC 투자를 받을 때 마다 이익을 회수하는 전략적인 투자자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할 만한 비상장 벤처에 직접 전문적으로 투자하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강남에서 정보통신(IT) 플랫폼 업체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대표는 “‘자금이 필요하지 않느냐’며 투자자와 연결해 주겠다는 브로커들의 전화를 심심찮게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개인투자자들이 비상장 벤처에 투자하는 것은 일종의 ‘모 아니면 도’와 같은 모험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장이나 추가 투자시 대박을 노린 엑시트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투자를 하지만 뜻대로 이뤄질 가능성이 흔치 않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벤처업계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가 다시 재확산 조심을 보이면서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은 그만큼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비상장 벤처 투자에도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훈·박호현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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