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책임지는 자세가 필요하다 싶어 제가 책임을 지고 오늘 사의 표명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3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주식 양도세가 부과되는 대주주 기준을 내년부터 현행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정부 방침이 여당의 압박에 밀려 좌절되자, 그간의 혼선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나선 것이다. 홍 부총리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은 이날 오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홍 부총리의 발언을 통해 공개됐다.
문 대통령이 이날 홍 부총리의 사의를 바로 반려한 후 재신임했다고 청와대가 밝히면서 외견상 사태는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연말 ‘개각 정국’과 맞물려 홍 부총리 사의 표명의 여진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여권과 청와대 안팎에서는 대규모 개각이 불가피한 시점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역대 정부에 비해 각료를 잘 바꾸지 않는 문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때문에 현 정부에는 유독 장수 장관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집권 3년 반이 넘어서면서 장관들이 리더십 위기에 봉착하고 지쳐가는 모습이 부쩍 눈에 띄고 있다.
경제 사령탑인 홍 부총리만 해도 지난 4월 긴급 재난지원금 대상 선정 과정에 이어, 이번 대주주 주식 양도세 문제에서 또 다시 여당의 뜻에 굴복하면서 입지가 좁아질 대로 좁아진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날 오전 국무회의 직후 문 대통령에게 이미 재신임을 받았던 홍 부총리가 오후에 국회에서 사의 표명 사실을 굳이 공개한 것 자체가 ‘물러나겠다’는 강력한 의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힘이 빠지고 있는 건 홍 부총리 뿐만이 아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재임 기간이 무려 3년 반이 넘는다. 역대 정부에서 초대 장관이 3년 반이 넘게 재임한 경우는 박근혜 정부의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김영삼 정부의 오인환 공보처 장관 등 손에 꼽을 정도다. 여권 관계자는 “일부 장관들은 체력적, 정신적으로도 한계에 부딪혀 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강 장관 역시 지난달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해외 공관 직원의 잇따른 성비위 사건과 관련한 지적을 받자 “리더십의 한계를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강 장관이 워낙 솔직한 화법을 구사하긴 하지만 이날 발언은 ‘강경화 교체론’과 맞물려 다양한 해석을 낳았다.
당시 국감에서는 주요 외교 문제에 강 장관이 개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야당 의원들의 지적도 잇따랐다. 이른바 ‘강경화 패싱’ 논란이다. 강 장관은 서해상 북한의 우리 국민을 피격한 후 청와대에서 새벽에 긴급 관계장관회의가 열렸을 때도 참석하지 못했다. 이와 관련 강 장관이 직접 “ NSC(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했다”며 청와대에 발끈했을 정도다.
이날 홍 부총리의 전격적인 사의 표명 소식이 전해진 이후 청와대와 여권 안팎에선 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역력했다. 홍 부총리의 사의 표명이 여당에 밀려 뜻을 굽힌 기획재정부의 ‘항명’으로 읽혀질 수 있는데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부담을 가중시켰기 때문이다. 결국 올 연말 서울시장 보궐 선거 등을 염두에 둔 대규모 개각과 맞물려 내각의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권 일각에선 지난 1일 단행된 차관급 인사를 향후 개각을 점칠 수 있는 주요한 가늠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이 경제부처 차관급을 대거 바꾼 것이 연말 개각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다.
당장 산업통상자원부만 해도 박진규 전 청와대 신남방·신북방비서관이 차관에 오르면서 성윤모 장관과 더불어 장·차관이 모두 충청 출신이 됐다. 현 정부가 역대 정부에 비해 지역 안배를 크게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 부처에 같은 지역 출신을 장·차관으로 계속 재임하게 두는 건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 밖에 없다.
아울러 도규상 전 청와대 경제정책비서관이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전격 발탁된 것 역시 향후 경제팀 인적 쇄신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손병두 전 금융위 부위원장,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 등 현 정부 주요 경제 관료들의 집권 말 재배치 여부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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