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향후 경제회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이끌 적임자”라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다시한번 힘을 실어줬지만 관가에서는 여전히 물음표를 제기한다. 재난지원금, 추가경정예산 편성, 재산세율 인하,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기준 변경 등 주요 경제 이슈를 여당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계속돼 홍 부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문 대통령의 발언으로 홍 부총리가 문재인 정부 마지막까지 경제 부총리직을 수행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5일 청와대와 관계부처 등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홍 부총리의 재신임 배경과 관련해 “향후 경제회복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이끌 적임자로 판단해 사표를 반려하고 재신임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홍 부총리는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큰 성과를 냈다”고 평가했다. 홍 부총리는 당정 협의 과정에서 주식 양도소득세를 부과하는 대주주의 기준을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추는 정부안 시행이 유예되자 지난 3일 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즉시 이를 즉시 반려하긴 했지만 홍 부총리가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사의 표명 사실을 언급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문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홍부총리의 사의 표명을 일종의 ‘항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일부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산 등 경제위기 와중에 경제수장을 바꿀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이 같은 문 대통령의 언급에도 불구하고 홍 부총리의 리더십 문제는 계속 거론될 수밖에 없다. 예산 편성이나 세제 변경 등의 주요경제 사안을 민주당이 주도하며 실무를 담당하는 기재부가 여당에 끌려다니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세제 개편을 주도했던 홍 부총리의 아파트 매각 문제와 전세 구입난이 언론에 회자되며 각종 온라인 게시판에 홍 부총리를 조롱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 수십년간 한국경제의 가파른 성장에서 핵심축 역할을 담당했던 기재부 내부에서도 홍 부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제기된다. 기재부 내부에서는 여권을 겨냥해 “차라리 이럴 거면 의원내각제를 해라”라는 말이 나오지만 기재부 수장인 홍 부총리의 보다 강경한 태도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문 대통령은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대상과 관련해 당정이 대립할 당시에 결국 ‘전국민 지급’을 주장한 민주당의 손을 들어줬다. 문 대통령은 당시 홍 부총리에게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해달라”고 말했지만 홍 부총리로서는 자존심이 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정치권이 연일 경제정책에 ‘미주알고주알’ 간섭하고 정치인 출신의 경제부처 장관들이 큰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홍 부총리가 연말 개각에서 살아남는 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령(令)’이 서기 힘들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거대 여당의 출현 이후 정치권이 주요 정책의 키를 쥐면서 홍 부총리가 경제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제부처 장관 출신 관계자는 “정치권이 부총리 해임을 공개석상에서 이야기 하는 등 부총리의 격에 맞는 대우를 하지 않다 보니 경제정책이라는 큰 방향이 일관성 없이 즉흥적으로 흘러가는 듯하다”며 “각종 경제현안에 대해 청와대가 직접 나서서 조율을 하는 등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데 각종 여론 반발에 너무 부총리만 몰아 붙이는 모습”이라고 밝혔다.
/세종=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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