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래 특허청장이 ‘코리안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K디스커버리(한국형 증거수집제도)’와 같은 훨씬 강화된 지식재산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코리안 패러독스’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 비율 등 양적인 부문은 글로벌 톱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기술수출액 비중이나 국내 R&D에 대한 외국인 투자비중, 지식재산 보호 등 질적인 부문에서는 하위권에 머물러 있다는 걸 의미한다.
김 청장은 지난 8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K디스커버리’에 대해 일부 경제단체가 걱정을 많이 하고 있는 걸로 안다”며 “그러나 ‘코리안 패러독스’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R&D 결과물인 특허나 지식재산을 지금보다 훨씬 강하게 보호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K디스커버리는 특허권자가 특허침해자를 상대로 증거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 정부가 도입 추진 사실을 밝히자 기업의 내밀한 영업비밀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고 특허소송을 부추길 수 있다는 반발이 불거졌다. ★본지 10월16일자 3면 참조
김 청장은 이를 의식해 “K디스커버리 도입의 방향은 맞는 것이고, 이제 와서 방향을 틀 수도 없다”며 “다만 업계 의견과 우려도 충분히 듣겠다”고 밝혔다. 도입 시기를 정해 놓고 일방적으로 K디스커버리를 도입하려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공감대를 얻어 추진할 수 있도록 설득작업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김 청장은 지난 8월 취임과 함께 K디스커버리에 가장 큰 우려를 보이고 있는 반도체협회를 찾아가 장시간 설득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청장은 “특허침해 피해액의 3배에 달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운영한다고 하지만 침해 사실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수집제도가 도입되지 않으면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며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를 더 강화하는 것만이 ‘코리안 패러독스’를 해결하는 근본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또 ‘코리안 패러독스’의 주요 원인인 정부 R&D과제의 중복과 성과 저조 등의 고질적 문제를 한방에 해결하기 위해 “특허청이 보유하고 있는 4억5,000만 건에 달하는 전세계 특허데이터를 정부 부처가 R&D 사업 결정 전에 미리 검색해 중복이나 최신 기술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의무화 하겠다”는 장기비전도 내비쳤다. 지금은 소재부품장비 분야 R&D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앞으로 정부 전 부처 R&D 사업으로 의무화를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김 청장은 “특허청이 접속할 수 있는 전 세계 4억5,000만개 특허 데이터는 전 세계의 기술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어떤 R&D를 지원해야 할 지 판단할 수 있어 예산 중복 등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청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전 산업분야에서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디지털 전환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아날로그 산업시대의 지식재산을 보호했다면 앞으로는 디지털 지식재산 보호가 더 중요해 질 수 있어서다. 김 청장은 “그동안 아날로그 지식재산 보호가 중요했다면 앞으로는 산업데이터 등 디지털 지식재산 보호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디지털 지식재산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고 어떻게 침해되며, 이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떤 규범들이 필요한 지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그는 온라인 등서 짝퉁이 범람하는 등 지식재산 침해 사례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단속할 인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김 청장은 “특허침해 신고가 연간 1만2,000건이 들어오는데 실제 특별사법경찰 24명이 수사에 나서는 것은 고작 400여건에 불과한 실정”이라며 “특사경이 100명까지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종곤·박호현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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