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장애인 근로사업장이 졸속 경영 논란 속에 벼랑 끝에 섰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시류를 겨냥해 마스크생산업체로 업종을 전환했으나 인사 구설수와 주먹구구식 투자 논란 속에 빚더미에 올랐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1989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장애인근로사업장인 정립전자는 수년간 적자를 기록하자 올해초 마스크 생산업체로 업종 변환을 추진했다. 이어서 지난 5월에는 정립전자를 운영하는 한국소아마비협회 이사회가 서모 이사를 마스크 사업을 추진할 시설장으로 내정했다. 서씨는 마스크 관련 사업 등 유사 사업을 맡아본 적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립전자는 서씨의 주도 하에 지난 7월 대당 6억 4,000만원에 육박하는 마스크 생산 설비를 구매했다. 당시 서씨는 지인 소개로 중국 현지 제조사의 설비를 실사도 않고 구매했다고 회사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전했다. 서씨는 “당시는 초당 80장을 찍는 게 2억 정도 할 때니까 300장을 찍는 것이니 (6억4,000만원이면) 적당한 가격이라 판단했다”고 밝혔으나 국내 시판가격보다 비싸게 산 것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이외에도 클린룸, 공장 리모델링 등에 총 40억여원이 투자됐다. 그렇게 구매한 설비는 말썽을 일으켰다. 일부 부품에 녹이 묻어있었고 설비 제원과 달리 가동 속도를 높이면 자꾸만 멈췄다.
논란이 일자 이사회는 사태의 모든 책임을 서씨에게 돌리고 있다. 김모 이사장은 “모든 사업을 서씨가 독단적으로 진행했다”며 “우리도 사기를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5~7월 세 차례 열린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이사진 역시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추가경정예산을 심사했다. 서씨는 “설비 구매나 마스크 공급 계약 등 큰 계약 때마다 보고들이 다 들어갔고, 일부 실무 라인들에는 즉각 보고를 했다”고 반박했다.
정립전자는 설상가상으로 빚까지 떠안게 됐다. 설비구매 대금마저 빚으로 묶여 있다. 정립전자 측은 설비를 받기도 전에 바이어들과 마스크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이때 받은 25억원의 선수금으로 설비를 구매했는데 설비가 제대로 작동을 안해 납품에 차질이 빚어진 것이다. 그 결과 계약 미이행에 따른 보상금만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마스크 생산 공장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기대했던 장애인 근로자들은 지난 10월부터 무급휴가에 들어갔다. 9월까지는 유급휴직이었지만 경영 실패로 사정이 어려워지자 이마저도 끊긴 상태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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