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성한 창작열과 독창적 예술관으로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던 김흥수(1919~2014) 화백은 말년에 한 미술관에 모여있길 바랐던 작품 70여 점이 대리인에 의해 한 불교재단에 넘어가 방치되고 있음을 알고 반환 소송을 벌였다. 법정 공방 4개월 만에 김 화백이 타계했고 장남이 나서서 승소하면서 작품을 되찾았다. 기쁨은 잠시 뿐, 국세청 추산 110억원대 유작에 대한 상속세 48억원을 내야 했다.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유지를 지키고자 아들은 ‘미술관 건립’을 조건으로 작품들을 한 재단에 기증했으나 약속이 지켜지지 않아 2017년 말 또 반환소송을 제기했다.
이를 계기로 세금 대신 그림을 낼 수 있게 하는 ‘상속세 물납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지지부진했다. 물납제는 국세인 상속세, 지방세인 재산세를 납부할 때 현금 대신 법이 규정한 자산으로 납부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현재는 부동산,유가증권으로 물납이 가능한데 여기에 고미술과 현대미술품을 추가하자는 것이 문화계의 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사)한국박물관협회와 함께 다음 달 1일 오후 2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상속세의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 도입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한다. 다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현장 참석자를 최소한으로 제한한다.
문체부 측은 “그간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는 세금부담 완화와 문화유산의 해외유출 방지를 위해 꾸준히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으나 적정한 가치평가와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 제도화에 실패했다”면서 “그러나 최근 간송미술문화재단의 ‘보물 2점 경매’와 손창근 선생의 김정희 작품 ‘세한도’(국보 제180호) 기증 사례를 계기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데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다시 제기됐다”고 밝혔다.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의 필요성은 예술적·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우수한 문화유산의 해외유출을 방지하고, 이를 공공 자산화해 국민의 문화향유권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사안이다. 물납제를 최초로 도입한 프랑스의 경우, 이 제도를 통해 정부 예산 규모로 구입하기 힘든 많은 미술품을 국가가 확보했고 ‘피카소 미술관’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번 토론회에서는 △정준모 미술비평가가 ‘박물관·미술관 상속세 물납 허용의 필요성’ △김소영 한미회계법인 회계사가 ‘물납제 도입 시 주요 검토 필요 사안과 제언’ 등을 발표한다. 이어 장인경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한국위원회 위원장이 좌장을 맡아 박선주 영은미술관장, 이원복 전(前)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실장, 캐슬린킴 법무법인 리우 변호사, 이재경 건국대 교수·변호사의 전문가 토론을 이끈다.
문체부 정책 담당자는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도’는 개인의 희생과 노력이 아닌 제도를 통해 우수한 문화유산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이번 토론회가 우리나라 문화 발전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