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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바이오&ICT
슈 게임·졸라맨 이제 추억 속으로···"RIP, 플래시"[오지현의 하드캐리]
쥬니어네이버 게임랜드가 제공하던 플래시 게임 ‘알피의 레모네이드 팔기’ 갈무리.




당신의 첫 게임은 무엇이었나요? ‘라스트 오브 어스’나 ‘사이버펑크 2077’ 같은 휘황찬란한 그래픽과 사운드를 자랑하는 ‘고급 게임’은 아닐 겁니다. 누구에게는 학교 컴퓨터실에 설치된 ‘공 튀기기’일 것이고, 또 누군가는 동네 오락실에서 남은 동전을 세어가며 했던 ‘스트리트 파이터’가 첫 게임의 기억이겠죠.

저에게 첫 게임은 ‘쥬니어네이버’였습니다. 방과 후 컴퓨터 앞으로 달려와 고기를 굽고(줌마’s 맛있게 냠냠), 슈에게 옷을 입혀주고(슈의 의상실), 만두를 빚곤(고향만두 만들기) 했죠. 동 세대 많은 게이머들의 추억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이런 ‘플래시 게임(Flash game)’이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영영 사라지게 됐습니다. 어도비가 플래시 플레이어에 대한 공식적인 지원 종료를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2021년 1월1일부터 플래시를 재생 가능하게 해주는 플래시 플레이어는 더 이상 지원되지 않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나 크롬 같은 웹 브라우저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나 게임을 실행할 수 없게 된다는 얘깁니다.

어도비 플래시는 1995년 개발돼 약 25년간 명맥을 이어온 소프트웨어 플랫폼입니다. 처음에는 웹 브라우저에서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기 위해 개발됐다가 프로그래밍이 가능해지면서 다양한 인터넷 문화의 바탕이 됐습니다. 감자도리, 엽기토끼(마시마로), 졸라맨 같은 국산 플래시 애니메이션 다들 기억하시죠? 플래시라는 기술은 요즘 말로 하면 인터넷 ‘밈(meme·유행하는 콘텐츠 요소)’의 최대 확산지였던 셈입니다.

대표적인 플래시 게임 중 하나인 ‘밍밍 vs. 왕따’ 갈무리.


무엇보다 플래시는 인디 게임 문화가 꽃필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준 형식입니다. 플래시 게임이 가장 활발하게 창작된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 약 10년은 구글 플레이나 애플 앱스토어 같은 앱 마켓도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았고, ‘스팀(Steam)’ 같은 플랫폼도 엄격한 관리 속에 매년 400~500개 게임만 출시하던 시기입니다.

이정엽 순천향대 교수는 ‘RIP Flash(뒤에서 설명)’ 프로젝트를 통해 발행한 글 ‘플래시 게임의 플랫폼적 특이성’을 통해 “엄밀한 의미의 ‘인디 씬(indie scene)’이 정립되지 않은 시기 아마추어 개발자들이 모여 자신의 창작 솜씨와 아이디어를 뽐내는 초기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의 성립은 플래시를 통해서 가능해질 수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김인숙 유니티코리아 대표가 지난 1일 개발자 행사 ‘유나이트 서울 2020’에서 발표하고 있다. /유니티


플래시는 ‘개발의 민주화’라는 현대적인 아이디어가 처음 출발한 곳이기도 합니다. 지금에야 유니티나 언리얼 같은 게임엔진이 인디 게임 개발자를 대상으로 무료로 제공되고 있다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게임엔진은 유료였습니다. 플래시는 20여 년 전부터 게임 개발사(史)에서 큰 역할을 맡아온 셈이죠.

RIP Flash 프로젝트를 기획·총괄한 박이선 게임 연구자는 당시 플래시를 통해 게임 개발에 뛰어들었던 ‘플래셔(플래시 사용자)’들을 실제로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한 인터뷰이는 “대학교 4학년을 졸업하고 (플래시 제작) 의뢰를 받았는데, 책을 사서 이틀을 공부해서 만들었다. 그만큼 쉬운데도 잘 돌아간다”고 플래시의 장점에 대해 언급하기도 합니다. 또 다른 플래셔는 “한 때 잘 벌 때는 플래셔로 1년에 억대 연봉을 받았고, 사업을 하는데 직원을 12명을 쓰기도 했다”며 플래시 제작 산업 부흥기를 회고했습니다.



다양한 플래시 게임을 HTML5 기술을 통해 보존한 ‘와플래시 게임 아카이브’ 웹사이트 갈무리.


플래시라는 형식은 수명을 다했지만 인터넷 세대가 그 토양 위에서 일구어낸 문화와 추억까지 소실되어선 안 되겠죠. 플래시 같은 웹 문화를 계속해서 보존할 수 있도록 하는 아카이빙 단체들의 노력으로 기술 지원 종료 이후에도 인터넷 이용자들은 플래시를 만나볼 수 있을 예정입니다. ‘와플래시 아카이브’, ‘Flash Point(플래시 포인트)’, ‘Web Archive 재단(웹 아카이브 재단)’ 등이 대표적입니다. HTML5(웹 프로그래밍 표준언어 최신버전) 기술을 통해 플레이어를 새로 만들어 플래시를 계속해서 재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플래시를 추모하기 위해 출발한 프로젝트 ‘RIP Flash’ 웹사이트. 플래시가 활발히 이용되던 2000년대 윈도우 환경을 패러디한 웹페이지 상에서 플래시와 관련된 다양한 글을 제공하고 있다. /웹사이트 갈무리


플래시를 적극적으로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인터넷 세대의 움직임도 눈에 띕니다. 문화연구, 게임연구, 미학, 미술사 등 다양한 분야의 배경을 가진 연구자들이 참여한 ‘RIP Flash(Rest In Peace·고이 잠드소서)’ 프로젝트가 대표적입니다. 박이선 연구자는 “2000년대 웹 문화는 플래시를 제외하고 논할 수 없을 정도로 웹은 플래시로 인해 더욱 인터랙티브하게, 다이나믹하게 발전했다”며 “하지만 그에 대한 담론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고 지나간 기술의 쇠락 차원으로 바라보는 점에 아쉬움을 가졌다”고 기획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플래시를 추도하는 ‘장례식’도 마련됐습니다. 원래 RIP Flash 운영 측은 검정 옷을 맞춰 입고 추도사를 공유하고 지방을 태우는 퍼포먼스를 계획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상황으로 인해 비대면 행사를 준비 중입니다. 오는 31일에는 ‘게임의 역사와 플래시’라는 주제로 플래시가 국내외에 끼친 영향을 짚어보는 토크 행사가, 다음 달 12일에는 ‘기억, 기록, 그리고 플래시’ 라는 주제로 플래시의 기억과 아카이브에 대한 토크가 이어집니다.

‘RIP Flash’ 웹사이트에 마련된 ‘메모리얼(Memorial)’ 코너에서 플래시를 추억하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웹사이트 갈무리


재밌는 것은 이 플래시를 둘러싼 추억이 ‘만국공통’이라는 점입니다. RIP Flash(◀클릭하면 이동) 홈페이지에는 플래시와 관련한 다양한 관점의 글들과 함께 직접 추모의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게시판이 마련돼 있습니다. “내 초등학교 시절을 책임져준 플래시, 어떤 플랫폼도 널 대신할 수 없을 거야. 잊지 않을게.(구름이둥둥떠다니고)” “플래시 너와 함께한 20년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네가 돈도 주고, 명예도 주고, 꿈과 비전도 주었어.(최재필)” 플래시에 추억을 가진 방문자들의 메시지가 마음을 울리는 가운데 “수많은 사람들의 아이디어에 생명을 불어 넣어줬다(Plazplay0o0)” “최고의 게임들은 너를 통해 만들어졌다(Brayden)” 같이 다양한 국가의 언어로 남겨진 메시지들도 눈길을 붙잡습니다.

플래시는 사라지더라도 플래시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영원할 겁니다. 잠시 RIP Flash에 들러 플래시 게임이 ‘그때 그 시절’ 당신에게 준 것에 대해 추억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요? 물론, ‘조의’를 표하는 것도 괜찮고 말입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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