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가까이 오로지 예금·적금만 했던 직장인 윤혜영(39) 씨는 이달 초 생애 처음으로 증권 계좌를 개설했다. 예금 만기 후 재예치를 하려다 이자가 너무 적다고 생각해 주식 투자로 눈을 돌린 것이다. 주식이 처음이기도 하고 노후 자금용으로 오래 묵힐 돈이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LG전자·포스코 등 튼튼한 대기업 주식들로만 계좌에 담았다. 윤 씨는 “시작하고 일주일 만에 모조리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서 너무 늦게 시작했나 보다고 자책을 많이 했는데 갑자기 몇몇 주식이 급등하면서 1년 예금이자보다 많은 수익을 올리게 됐다”며 “주식 투자가 이런 건가 싶어 신기하면서도 불안한데, 어쨌든 앞으로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들었다”고 말했다.
올해 증시에 뛰어든 개인 투자자의 상당수는 윤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금리와 꽉 막힌 부동산 규제로 돈 굴릴 곳을 찾지 못해 주식으로 눈을 돌렸는데 때마침 상승장이 펼쳐져 기대 이상의 수익을 거뒀던 경험 말이다. 올해 ‘코로나 쇼크’로 이 같은 행운을 경험한 수많은 개인은 본격적인 주식 공부를 시작했고 투자금을 늘려가면서 국내 증시를 이끄는 명실상부한 큰손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하지만 개인들의 투자 열풍 이면에는 불안 요소도 적지 않다.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연일 경신하는 것과 동시에 빚을 내 투자하는 ‘빚투’ 규모 역시 19조 원을 넘나들며 최고치를 찍었다. 단기간에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위해 ‘단타’를 거듭하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하루 17조 원 굴리는 개미들…증시의 거인이 되다=28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개인 투자자들의 일평균 거래 대금은 약 17조 3,000억 원으로, 증시 전체에서 하루 거래되는 자금인 22조 7,000억 원의 76.2%를 차지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6조 원 규모에 그쳤던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올 들어 288%나 늘어난 셈이다. 주식시장에서 개인의 자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전년 64.8%에서 11.4%포인트 증가했다.
개인들의 영향력이 이렇게 커진 데는 올해 새롭게 주식 투자에 나선 ‘스마트 개미’들이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주식거래 활동계좌 수는 3,472만 4,086좌로 올해 초(2,935만 6,000좌) 대비 약 536만 좌(18.2%) 증가했다. NH투자증권의 분석을 봐도 올해 11월까지 신규 개설된 계좌는 126만 5,437개로 전체 계좌(약 604만 개)의 21%에 달했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의 투자가 늘어났는데 20대의 경우 총 64만 개의 계좌 중 67%인 43만여 개가 올해 새로 만들어진 계좌였다. 증권가는 20대가 겪는 만성적인 취업난과 규제로 막혀 버린 부동산 투자, 초저금리에 따른 유동성 완화, 3월 코로나 쇼크 후 증시가 급상승하며 높은 수익을 거둔 ‘학습 효과’ 등이 이들 투자자를 증시로 이끈 요인으로 보고 있다.
◇코스피 2,800 넘었지만 ‘고수익’에 목매 빚투·단타 늘기도=이들 스마트 개미는 올해 시장의 매수세를 주도하며 국내 증시를 상승세로 이끈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이들이 올 들어 순매수한 주식은 코스피 45조 7,999억 원어치, 코스닥 15조 9,508억 원어치 등 63조 5,477억 원어치에 이른다. 이 기간 코스피와 코스닥 상승률은 27.7%, 38.0%에 이르는데 이는 주요20개국(G20)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개인 투자자들의 자금이 증시로 유입되면서 국내 증시의 체력이 튼튼해졌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악재가 출현하면 빠르게 증시를 이탈하는 외국인·기관과 달리 개인들의 투자금은 이익 실현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 경향이 높다는 것이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개인이 증시를 주도하는 상황은 지수 하단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투자 열풍에는 ‘고수익’을 목적으로 잦은 매매(단타)를 하거나 대출을 일으키는 빚투 등의 위험천만한 투자 행태도 적지 않다. 일각에서는 거대한 주식 투자의 흐름 속에서 나만 뒤처지면 안 된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개인을 잦은 매매로 이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시장의 11월 기준 상장 주식 회전율이 43.7%로 지난해 말(18.51%)과 비교해 두 배 이상 늘었다. 이는 한 달 동안 코스피 상장 주식의 43.7%가 거래되고 두 달이면 상장주 전부가 한 번씩 거래될 수 있다는 의미다. 코스닥시장의 회전율은 하루 평균 5%에 달했다. 매일 코스닥 상장 주식 1,470개의 5%가 거래되고 한 달이면 상장 주식 전부가 한 번씩 거래되고 있다는 말이다. 실제 NH투자증권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증권 계좌를 연 20대는 올해 투자 원금의 5,000%가 넘는 금액의 주식을 사고판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의 계좌에는 평균 583만 원의 자금이 있었는데 빚투와 단타를 통해 올해 3억 원 이상을 거래했다는 의미다.
전문가들은 개인들의 투자 성공 확률과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빚투와 단타는 지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사고팔고를 많이 한다는 것은 싼 가격과 비싼 가격을 정확히 알고 대응한다는 의미일 텐데, 사실 특정 종목의 시세는 누구도 정확히 알기 어렵다”며 “특히 올해는 큰 조정 없이 주가의 꾸준한 상승이 있었는데 이럴 때일수록 자주 사고파는 것은 좋은 수익을 올릴 확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주식 투자에는 ‘기다림’이 상수로 존재한다”며 “감당하기 어려운 대출을 낸다는 것은 적정 수익을 거둘 때까지 기다릴 수 없게 만드는, 투자에 있어 스스로 핸디캡을 만드는 행위”라고 조언했다.
/김경미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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