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소비자물가가 사상 처음 2년 연속 0%대 상승률에 그쳤다. 사회적 거리 두기 영향으로 외식을 포함한 개인 서비스 물가 상승률은 8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국제 유가 하락과 수요 감소, 정부의 복지 정책이 겹쳐 저물가의 주요인으로 작용했고 일각에서는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에 따른 경기 침체) 진입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온다.
3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올해 소비자물가지수는 105.42(2015=100)로 전년 대비 0.5% 상승했다. 지난해 0.4%로 역대 최저였던 데 이어 2년 연속 0%대인 것이다. 이는 지난 1965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0%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 직후인 1999년(0.8%)과 저유가와 경기 부진이 겹쳤던 2015년(0.7%)을 포함해 모두 네 차례다.
물가 상승률이 0%대에 그친 배경은 코로나19에 국제 유가가 하락하며 석유류가 -7.3%를 기록하는 등 공업 제품이 0.2% 하락한 영향이 크다. 저유가에 전기·수도·가스도 1.4% 내렸다. 거리 두기에 따른 외식 물가(0.8%) 상승 폭 제한과 함께 PC방·볼링장 등 다중 시설 이용이 줄어들면서 개인 서비스 상승률은 1.2%로 2012년(1.1%) 이후에 가장 낮았다. 아울러 고등학교 납입금과 통신비 지원 등으로 공공서비스는 지난해 -0.5%에서 -1.9%로 하락 폭이 커져 1985년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반면 농축수산물 가격은 6.7% 상승해 2011년(9.2%) 이후 최고치였다. 돼지고기(10.7%) 등 축산물과 배추(41.7%) 등 농산물 가격 상승이 두드러졌다. 집세는 0.2% 올랐다. 전세는 0.3%, 월세는 0.1% 상승했다. 신선식품지수는 9.0% 올라 2010년(21.3%)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체감 물가를 보여주는 생활물가지수는 0.4% 올라 2018년(1.6%) 이후 상승률이 가장 높았다.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여주는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는 0.7% 상승했다. 이는 외환 위기를 빠져나오던 1999년(0.3%) 이후 가장 낮은 상승률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0.4% 올랐다. 역시 1999년(-0.2%) 이후 최저다. 2년 연속 0%대 저물가로 인해 디플레이션 우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2년 연속 0%대 물가지만 국제 유가 인하와 정부의 정책적 요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디플레이션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내수가 점진적으로 회복하고 무상 교육, 무상 급식 등 정책적 하방 압력이 줄어들면 물가 상승 폭이 올해보다는 커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코로나19 전개 양상과 원자재 가격 움직임을 변수로 꼽았다.
/세종=황정원기자 garde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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