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국정 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면서 삼성은 총수 공백이라는 초유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미중 패권 다툼 등 극도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 아래에서 총수인 이 부회장마저 재수감되면서 삼성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 부회장 구속으로 삼성은 매우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반도체를 비롯한 산업 전반이 대전환기인데 투자부터 인수합병(M&A) 등 중요한 의사 결정을 내릴 리더십이 부재한 상황이 현실화됐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삼성이 우리나라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생각하면 삼성의 위기는 대한민국 경제 전반의 위기로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2016년 11월 이후 대형 투자 끊겨
실제 삼성은 지난 2017년 2월 이 부회장이 구속되고 이듬해 2월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 1년간 중요한 투자 계획과 의사 결정, 인사 등이 미뤄지며 암흑기를 보낸 바 있다. 수조 원 단위의 대규모 M&A는 사법 리스크가 불거지기 직전인 2016년 11월 미국 자동차 전자 장비(전장) 업체 하만을 8억 달러에 인수한 뒤 지금까지도 명맥이 끊긴 상태다.
특히 지난해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한 뒤 삼성의 공식적인 총수가 된 이 부회장이 다시 수감되면서 삼성 특유의 초격차 전략에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삼성의 ‘잃어버린 10년’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016년 11월부터 4년 넘게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이 부회장이 앞으로 1년 6개월 동안 회사 경영을 챙길 수 없게 된 데다 경영권 승계 관련 새로운 재판도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당장 삼성전자가 올해 ‘슈퍼 사이클(초호황)’이 예상되는 반도체 시장 경쟁에서 낙오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하는 글로벌 업체들은 대규모 M&A 및 투자를 선제적으로 단행하며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지난해 미국 엔비디아는 영국 반도체 설계 회사 ARM을 인수하기로 했고 SK하이닉스도 인텔의 낸드플래시 사업을 품에 안았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1위 업체인 대만 TSMC는 삼성전자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 올해 설비투자로 250억∼280억 달러(약 27조~31조 원)를 집행할 계획이다. 증권 업계에서 예상하는 삼성전자의 올해 시스템 반도체 투자액 12조 원의 두 배가 넘는 규모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이 다시 구속되며 오는 2030년까지 총 133조 원을 투자해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에 오른다는 ‘반도체 비전 2030’ 달성에 빨간 불이 켜졌다. 삼성전자의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증설 등 국내외 대규모 반도체 투자 계획 발표도 한동안 중단될 가능성이 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규모 투자 및 M&A 결정에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리스크를 책임질 총수의 결단이 필수적”이라며 “이 부회장 공백 속에 삼성의 전문 경영인들이 5년, 10년 뒤를 내다보며 공격적인 결정을 내릴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우리 경제 미래 신사업 전략 차질 빚을 수도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인 권오현 삼성전자 상임고문은 지난해 사내 방송을 통해 “전문 경영인이 적자가 누적되고 불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몇 조 원의 투자를 말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최근 “삼성이 장기화하는 리더십 공백 때문에 인텔처럼 점진적인 하락세에 처할 위험이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의 재구속으로 삼성의 미래 성장 동력 육성이 차질을 빚으며 국가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삼성은 2018년 향후 3년간 180조 원 투자 계획을 밝히며 인공지능(AI)과 5세대(5G) 이동통신, 바이오, 전장 사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우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부회장은 이번에 집행유예가 선고될 경우 글로벌 현장 경영을 재개하며 미래 먹거리 발굴에 집중할 계획이었으나 구속 결정으로 물거품이 됐다.
삼성이 신성장동력으로 점찍은 시스템 반도체와 바이오 등은 우리 정부가 적극 육성하려는 미래 신사업 분야들이다.
한 경제 단체 관계자는 “삼성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면서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 등 삼성이 주축이 돼 진행되는 범국가적인 미래 성장 동력 육성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재용·전희윤기자 jy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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