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 다 터져가 말을 몬하겠심더. 나라가 생짜배기로 거짓말한 거 아닌교. 무신 나라가 이런교.”
동해가 내려다보이는 경북 영덕군 영덕읍 석리 마을의 김경찬(75) 이장은 울분부터 터뜨렸다. 이 마을은 지난 2012년 전체가 천지 1·2원전 예정 구역으로 묶였다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12일 공식 해제된 곳이다. 22일에 찾은 어촌 마을은 겉보기에는 여느 한적한 시골과 다를 바 없었지만 주민들의 속은 시커멓게 타 들어가고 있었다.
석리 마을은 천지원전 예정 구역에 편입됐던 영덕읍 노물리·매정리, 축산면 경정리 일대 324만 ㎡ 가운데 지역 주민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120여 가구 중 20여 가구는 보상을 받고 마을 떠나거나 이주 단지가 완성될 때까지 살던 집에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나머지 대다수는 보상을 기다리다 탈원전의 날벼락을 맞았다. 곧 터전을 옮긴다는 생각에 농사와 어업을 포기한 어르신이 많았다. 그사이 논밭은 황무지와 솔밭으로 변했고 어촌계는 계원 10명을 채우지 못해 해체 위기를 맞고 있다. 주민들은 원전예정구역 지정 이후 10년 동안 재산권 행사뿐 아니라 태풍으로 지붕이 망가져도 집 수리조차 못하는 피해를 당했지만 보상을 받지 못했다. 약속한 집단 이주 마을 조성은 공수표가 됐다. 가건물을 지어 과태료 처분을 받은 주민도 있다. 윤명곤(57) 석리마을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어업을 포기하거나 마을을 떠나는 바람에 어촌계원이 9명밖에 남지 않아 어촌계장이 애를 먹고 있다”고 전했다.
짧은 토지 보상 기간은 마을을 갈라놓았다. 한국수력원자력이 토지 보상에 착수한 시점은 2016년 12월. 이듬해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 탈원전 정책을 공식화하자 한수원은 그해 6월 중순부터 보상 절차를 중단했다. 우선 보상청구권을 행사한 일부 주민과 그렇지 않은 주민은 얼굴을 붉히는 사이가 됐다. 보상을 받은 전임 이장도 결국 지난해 마을을 떠났다.
보상을 노린 외지인들의 투기성 펜션 건축은 주민들의 박탈감을 더 키웠다. 외지인들은 우후죽순처럼 펜션을 지었다가 보상을 받은 뒤 철새처럼 떠났다고 한다.한수원은 이달 초 날림공사로 태풍 때 지붕 등이 뜯겨 나간 패션 11개 동을 안전 조치상 철거했다.
/영덕=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