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보이는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의 상속세와 관련해 세율 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정부가 상속세율을 내릴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동안 재계에서는 우리나라의 상속세가 지나치게 높아 기업가 정신을 꺾을 수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상속세 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2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상속세율 인하를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여러 경로로 상속세가 높다는 지적을 접하고 있지만 현재 별도로 세율 인하를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국제적인 상속세 부과 수준이 있고 또 세금을 능력에 비례해 결정하는(응능 부담의 원칙) 것이 조세의 취지”라고 밝혔다. 우리나라 상속세 체계가 국제 수준과 비교해 지나치게 과중하지 않고 이에 따라 앞으로도 세율 인하를 논의할 계획이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홍 직무대행의 답변과 달리 우리나라 상속세는 최대주주 할증(20%)을 포함할 경우 60%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세금 부담 때문에 락앤락·유니더스 같은 기업들은 창업주 생전에 경영권 지분을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넘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학계에서는 “상속세율을 인하하거나 자본이득세로 전환해 징벌적 과세에 따른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예산 편성에 대해서는 혹독한 지출 구조 조정을 예고했다. 그는 “올해 지출 구조 조정은 예년보다 월등히 많이 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보조금 등 일부 예산은 똬리를 틀듯 자리를 잡아 관성적으로 편성되는 경우가 있는데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지출 구조 조정을 통해 늘어난 예산은 내년도 복지, 인프라 투자, 연구개발(R&D) 등으로 돌려 예산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게 홍 직무대행의 복안이다.
홍 직무대행은 이어 국회에서 법 개정을 준비하고 있는 예비타당성 완화 문제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현재 국회에서는 예타 기준을 완화하거나 면제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의 국가재정법 개정안이 다수 발의된 상태다. 그는 예타 기준을 500억 원에서 1,000억 원으로 상향하는 움직임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다”며 “예타가 안 나와서 지역 균형 발전에 문제가 너무 오래 걸리고 까다롭다는 의견이 있어 제도를 좀 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예타를 거치지 않은 프로젝트가 늘어 예산 낭비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공청회 등을 통해 여러 기관에서 수렴해 결정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세종=서일범 기자 squ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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