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씨티은행이 27일 이사회를 열고 국내 소매 금융 철수를 위한 본격 논의에 나섰다. 매각 방식에 따라 인수 주체는 물론 금융 당국 및 직원, 고객과 협의할 사안이 달라지는 만큼 철수 시나리오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씨티 측은 일단 소매 금융 전체를 일괄 매각하는 ‘통매각’을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관심이 거의 없는 시중은행을 제외하면 2조 원에 이르는 인수 가격을 감당할 국내 금융사가 드물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자산관리(WM), 신용카드 등을 나눠파는 분리 매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마저도 실패하면 단계적인 업무 폐지를 거쳐 청산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에 따르면 이날 오후 한국씨티은행은 화상회의 방식으로 씨티그룹의 ‘13개국 소비자금융 철수’ 발표 이후 첫 이사회를 열었다. 회의에서는 국내 시장에서 한국씨티은행의 소비자 금융 출구 전략에 대한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씨티그룹은 지난 15일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3개국에서 소비자 금융 사업을 접겠다고 밝혔다. 철수 의사는 나왔지만 구체적인 방식이나 목표 시한 등은 공개하지 않아 업계에서는 후속 방안을 두고 다양한 시나리오가 오갔다.
이상적인 방안은 통매각이다. 소매 금융 전체를 일괄 매각하면 한 번에 정리할 수 있고 매각 가격도 더 높게 받을 수 있다. 2104년 씨티그룹이 일본씨티은행의 개인 금융 부문을 매각할 때 미쓰이스미토모은행이 이를 통째로 인수한 사례가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소매 금융과 신용카드 부문은 연관성이 높은 만큼 최대한 묶어서 가장 높은 가격에 팔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괄 매각하는 만큼 고용 승계 등의 조건 등을 더해 인수 희망자와 딜을 하면 노조의 불만도 잠재울 수 있다.
문제는 이 경우 2조 원 안팎의 자산 가치를 감당할 곳을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한국씨티의 소매 금융을 인수해봐야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지방은행이나 제2 금융권은 자금력이 부족한 데다 인수해도 한국씨티의 우량 고객들이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적으로 볼 때 WM·신용카드 등 소비자 금융의 각 사업 부문을 분리해서 별도 매각하는 방식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씨티그룹의 고객 경쟁력이 고액 자산가 중심의 WM 부문에 있고 은행업의 변화에도 프라이빗뱅킹(PB) 서비스는 전통 은행이 강점을 지닐 것으로 예상된다. 씨티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은행의 고액 자산가 등급 고객 수는 전년 말 대비 14% 증가했다.
신용카드 분야는 전망이 엇갈린다. 씨티카드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에 불과하다. 카드 업계는 빅테크·핀테크 등 간편 결제 업체와의 경쟁이 가속화되고 가맹점 수수료는 갈수록 낮아지는 데다 카드론 등의 이자율도 낮아져 미래 수익성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한편에서는 씨티카드의 고객 충성도나 리볼빙 수수료 수익 등을 고려할 때 수익성이 높은 편이라며 나름 알짜 매물이 될 수도 있다고 분석한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적정 가격과 직원의 고용 승계 여부가 될 것”이라며 “점유율 0.1%를 올리려면 1,000억 원을 써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만큼 카드 업계 전체가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매각이 불발돼 사업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다가 폐지하는 방식이다. HSBC은행의 경우 2012년 개인 금융 업무에서 손을 뗄 때 당초 산업은행에 매각려다가 직원의 고용 승계 등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해 2013년 결국 청산 절차를 밟았다. 어떤 방식을 택해도 한국씨티은행의 철수 과정이 짧게는 수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모든 실행 방안에 대해 신중하게 검토하면서도 늦지 않은 시일 안에 최적의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예정”이라며 “향후 계획이 확정될 때까지 고객 서비스는 기존과 동일하게 제공되며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광수 기자 brigh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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