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유족이 지난달 30일 용산세무서에 약 12조원의 상속세를 신고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가 2011년 사망했을 당시 유족에게 매겨진 세금 28억 달러(약 3조 4,000억원)의 3배가 넘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을 비롯한 외신들도 “삼성이 부담하는 상속세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12조원”이라며 그 규모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삼성 일가는 어쩌다 세계 최대 규모의 상속세를 부담하게 됐을까요?
①韓 상속세 최고세율 60%, OECD 평균은 15%
한국의 상속세 최고세율은 5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일본(55%) 다음으로 높습니다. 하지만 한국에는 ‘최대주주 할증평가’ 제도가 있습니다. 상속자산이 최대주주 지분일 경우 30억원을 초과하는 지분에 50%의 상속세율을 매기고 20%를 할증하는 겁니다. 이에 따라 실질적인 최고 상속세율은 60%가 됩니다.
OECD 회원국의 상속세 평균은 15% 수준에 불과합니다. 미국이 40%, 독일이 30%, 프랑스가 45%의 상속세 최고세율을 부과하며 OECD 국가 중 상속세를 폐지한 나라도 뉴질랜드, 캐나다, 호주를 비롯해 13개국에 달합니다. 대표적으로 호주에서는 상속인이 자산을 처분해 실제 처분 이익이 발생할 때 그 차익에 대해서만 과세합니다. 가령 아버지가 100억원에 사들인 자산을 자녀가 상속받은 뒤 150억원에 팔았다면 50억원에 대해서만 일반소득세율(45%)을 적용하는 거죠.
②살아 있을 때도 소득세 45% 내는데…
살아 있을 때 소득세를 물었던 자산에 대해 또 다시 고율의 상속세를 부과한다는 점에서 ‘이중과세’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45%인데 사후에 최고 60%의 상속세를 추가로 부과 받는 셈입니다. 독일에서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45%인 반면 상속세가 30%이고, 프랑스에서는 두 세금의 최고세율이 45%로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세금 구조가 이렇게 짜인 데 이유가 있긴 합니다. 과거에는 소득이 투명하지 않고 세원 파악에 어려움이 있었던 만큼 높은 수준의 상속세를 매겨 생전에 내야 했던 세금까지 한꺼번에 거뒀던 겁니다. 사람이 죽고 나서 숨겨진 재산이 들통 나는 일도 허다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득 투명성이 크게 향상돼 이러한 과세 구조가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③기업가 정신 갉아먹는 가업상속공제제도
상속이 창업과 기업 경영의 중요한 동기라는 점에서 ‘징벌적’ 수준의 상속세율은 기업가 정신을 갉아먹는 요인이 됩니다.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국내에 도입된 제도가 ‘가업 상속 공제 제도’입니다. 10년 이상 운영한 중소기업을 18세 이상 자녀에게 상속하는 경우 상속세를 감면해 줍니다.
하지만 공제 혜택을 받기 위한 요건이 너무 까다로워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혜택을 받으려면 기업의 지분을 50% 이상(상장 기업은 30% 이상) 10년 이상 보유해야 하고, 상속 전 5년 이상 대표이사로 일해야 합니다. 또 상속을 받으려는 자녀는 2년 이상 가업에 종사해야 하고, 상속세 신고 기한까지 임원으로 취임하고, 2년 이내 대표이사로 취임해야 합니다. 문제는 가족 기업이 외부 자본을 유치하다 보면 대주주 지분율이 낮아질 수밖에 없는 데다가 경험 없는 자녀가 2년 이내 대표이사를 맡기는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상속세율이 높은 일본에서도 중소기업들이 상속세 부담으로 폐업하는 일이 잇따르자 ‘가업 승계 제도’ 요건을 대폭 완화했습니다. 비상장 중소기업이 주식을 상속할 경우 100% 상속세를 면제해줍니다. 그러자 가업 승계 신청 건수는 제도 변경 전인 2017년 396곳에서 2019년 3,815곳으로 늘었습니다.
스웨덴의 발렌베리 가문이나 미국 포드, 독일 BMW 등은 차등의결권 및 공익재단 등을 활용해 4세대, 5세대까지 기업을 승계하고 있습니다. 임동원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과도한 상속세 부담은 상속 재산을 감소시킬 뿐 아니라 경영권 승계를 불확실하게 해서 기업가 정신을 약화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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