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부산 남구 부산항 신감만부두 하역장. 컨테이너를 싣고 온 노란색 야드 트랙터가 작업장에 멈춰 섰다. 하늘 높이 설치된 크레인에서 이동식 컨테이너(RTG) 크레인의 손에 해당하는 스프레더가 천천히 내려왔다. 스프레더는 40피트형 컨테이너의 네 귀퉁이를 단단히 결박한 뒤 컨테이너를 들어 올렸다. 크레인 쪽으로 고개를 들자 투명한 창이 있는 크레인 운전석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이 크레인을 제어한 엔지니어는 이곳에서 1km 이상 떨어진 동원부산컨테이너터미널 사무실 2층에 있었다. 크레인 곳곳에 달린 15개의 카메라가 눈이 돼 직접 사람이 크레인 위에서 조종하지 않고도 원격으로 컨테이너를 옮기고 쌓는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LG유플러스(032640)가 부산항만공사와 손을 잡고 스마트항만 구축을 위해 조성한 테스트베드 현장에서 목격한 모습이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콘솔박스(원격 조종석)를 살펴보니 엔지니어가 여러 개의 분할 화면으로 컨테이너 위치를 파악한 뒤 크레인 스프레더를 조정하고 있었다. 기자가 직접 조종석에 앉아 엔지니어의 지도에 따라 크레인 스프레더를 내려 봤다. 마치 게임을 하듯 조이스틱을 종횡으로 움직이자 스프레더가 그에 따라 이동했다. 주변에서는 “인형뽑기를 하는 것 같다”며 탄성이 흘러 나왔다. 사람의 눈으로는 1mm 오차까지 잡아내기 어렵기 때문에 사람이 큰 방향을 움직이고 나면 스프레더가 나머지 오차를 감지해서 결합한다. 현장 관계자는 “원격으로 스프레더와 컨테이너를 연결할 때 조종실로 전해지는 시각 정보가 1초만 늦어도 컨테이너가 이미 적재한 다른 컨테이너에 부딪히는 등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며 “LG유플러스 5G의 초지연 기술 덕분에 아직까지 별 사고없이 테스트가 잘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원격 제어는 5G 기술을 통해 현장 정보를 디지털화해서 전달받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 해낼 수 있게 해줬다. 현장에서 크레인 기사가 조종할 때는 한 대 당 4~5명의 인력이 교대로 일을 했지만, 원격 제어 방식으로 작업하자 한 사람이 4대의 크레인을 조종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사람은 시야각의 제한 때문에 컨테이너를 3단 이상 쌓을 수 없지만, 원격 제어를 활용하면 4~5단까지 쌓을 수 있다. 컨테이너의 보관 공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 항만의 생산성도 향상됐다.
항만의 컨테이너 원격 제어는 롱텀에볼루션(LTE) 네트워크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초고속·저지연을 비롯해 다수의 기기에 연결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진 5G 네트워크가 적용됐기에 가능했다. 서재용 LG유플러스 스마트인프라사업담당(상무)은 “영상으로 원격 제어를 하기 위해서는 초당 180Mb 이상의 정보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LTE로는 구현할 수 없는 기술"이라며 “현재 부산항은 5G 중에서도 3.5Ghz 시스템을 구축로 준비를 했고, 신선대 부두에는 28Ghz를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벤처기업 쿠오핀이 개발한 ‘저지연 영상전송 솔루션’으로 영상 전송 시간을 84% 이상 단축한 것도 큰 기여를 했다. 이 솔루션은 LG유플러스가 지난해 벤처기업 쿠오핀에 지분투자를 통해 확보한 기술로, 원격제어 서비스 필수 아이템이다. 초고용량 영상을 최대한 압축시켜 지연시간을 최소화해주는 것이 핵심이다. 기존 영상 중계 서버는 풀HD 기준으로 500ms 이상의 지연이 발생하지만, 저지연 영상전송 솔루션을 적용하면 100ms 수준으로 줄어든다.
부산 항만에 적용 중인 특화망을 필요로 하는 모바일 엣지컴퓨팅(MEC) 기술 기반의 5G 융합서비스는 앞으로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장기적으로는 컨테이너를 나르는 야드트랙과 물류창고의 3방향 지게차를 자율 주행으로 움직이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불꽃·연기 등을 인공지능(AI) 영상 분석 기능을 갖춘 자율주행 드론이 감지해 알려주는 솔루션도 구축할 계획이다. LG유플러스는 부산항에 이어 부산 신선대 터미널·광양항까지 늦어도 내년까지는 스마트 항만을 도입할 계획이다. 서 담당은 “과기정통부가 주관한 5G MEC 과제에서 LG유플러스가 제안한 스마트 항만·스마트 산단·스마트 시티가 모두 채택됐다”며 "오는 2026년까지 25조 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는 5G B2B 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워 성장동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혜진 기자 made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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