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으면서 내년부터 과세한다고 하는 것은 무책임한 것이죠. 미래 디지털 금융을 선도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컴퓨터공학과 교수인 인호(54·사진) 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장은 3일 연구실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기준을 마련해 투자자를 보호하면서 과세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 소장은 “블록체인이 몇 년 전부터 부각되는 것을 이용해 그럴싸하게 잡코인(알트코인)을 만들어 다단계식으로 파는 유사 수신 행위나 사기도 늘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인 소장은 지난 2014년 한 학생을 암호화폐거래소 인턴으로 보낸 것을 계기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본격적으로 연구해왔다. 그는 “암호화폐 시장에서 완전히 불이 붙었는데 정부가 위험하다고만 하고 책임감 있게 나서지는 않고 있다”며 “자칫 오는 9월 24일까지 특정금융거래정보법상 거래소들이 신고 절차를 마치지 못하면 무더기 폐업 사태가 빚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암호화폐의 하루 거래량이 코스피나 코스닥시장을 합친 것보다 커졌는데 어떻게 보는가.
△굉장히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화폐가 아니고 가상자산이라고 표현했지만 성격에 관한 분명한 규정이 없다. 우리 관할이 아니라며 선을 긋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림을 사고 팔더라도 위작에 대해서는 조사를 요구할 곳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 더욱이 그림을 다단계로 모집해 판다면 유사 수신 행위에 대해 검찰 조사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투명한 유통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아직 컨트롤타워가 없다. 그런데 내년부터 암호화폐 차익에 대해 기본 공제 250만 원 초과 이익의 20% 세율(지방세 2% 별도)로 분리 과세를 한다고 하니 2030세대 등 코인 투자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익을 보면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지금까지 암호화폐 시장에 지하 자금이 많이 몰렸지만 차익에 과세도 하지 않아 무법 지대가 됐는데.
△이익에 대한 과세는 당연한데 그렇게 하기 위해 암호화폐 시장도 주식시장처럼 기준을 만들고 투자자를 보호해야 한다. 세금을 걷으려면 시장의 투명성 보장 조치를 취해야 한다.
-해외에서는 암호화폐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금융시장이 발달한 스위스에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와 관련해 신탁·대출·예금 서비스를 하는 크립토뱅크가 5개 출범했다. 홍콩은 기존 은행과 정보기술(IT) 기업이 힘을 합친 가상은행에 코인 발행·매매·중개·보관·전송·폐기 등 10여 개 기능의 라이선스를 줬다. 해외로 나가는 중국 관광객 중 1,000만 명가량에게 이 토큰을 사용하게 하겠다는 복안을 가진 것이다. 캐나다는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를 세계 최초로 승인했다. 일본은 일찌감치 암호화폐거래소 등록제를 실시했다.
-하지만 달러 패권을 쥔 미국에서는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등이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다. 또 중국처럼 아예 암호화폐 거래를 금지하는 나라들도 있는데.
△그들은 암호화폐에 내재 가치가 없을 뿐 아니라 투기성이 있고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5만 원짜리 지폐를 정부가 보증한다면 비트코인은 컴퓨터가 보증한다고 볼 수도 있다. 비트코인에는 2,100만 개 발행량 제한 등 여러 규칙이 있다. 돈이 많이 풀려 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면 현금 가치는 떨어진다. 암호화폐를 선호하는 사람들은 비트코인을 디플레이션 화폐라고 믿는다. 비트코인 발행량이 4년마다 절반씩 줄게 돼 있는데다 현재 발행 여력이 12%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은 그렇다 쳐도 잡코인의 다단계 방식 판매도 만연해 있는데.
△최초의 가상자산인 비트코인은 주식으로 치면 삼성전자 같은 것이다. 컴퓨터 지식을 웬만큼 갖고 있으면 잡코인을 한두 시간 내에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코인 생태계를 조성하지 못하고 코인만 발행해 다단계식으로 유사 수신 행위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암호화폐 시장의 기축통화 역할을 하는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이 환금성 있는 강남 아파트라고 친다면 잡코인은 시골의 팔리지 않는 산에 비유될 수 있다.
-특금법 시행 유예 6개월이 끝나는 9월 24일까지 암호화폐거래소가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거래소가 폐쇄되고 상장된 암호화폐들이 휴지 조각이 될 수도 있는데.
△암호화폐거래소는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획득하고 은행의 실명 인증 입출금 계좌를 보유해야 한다. 은행들은 현재 빗썸 등 4개 암호화폐거래소와 거래하고 있다. 은행들은 9월에 4개 거래소들과의 계좌를 연장해야 하고 다른 200여 개 중소 거래소와의 계좌를 새로 열지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감독 당국이 기준을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은 채 알아서 하되 문제가 되면 책임을 지라고 하니 난감한 입장이다. 최근 은행연합회 차원에서 자금 세탁 방지에 초점을 맞추고 코인의 안전성과 내부 통제 등을 심사하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으나 한계가 있다. 만약 많은 중소 거래소들이 고사하게 되면 엄청나게 많은 피해자가 생기고 4개 거래소만 과점하게 된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흔히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한다. 암호화폐에 대한 감독 기준이 시급한데.
△그렇다. 블록체인을 발전시키기 위해 인센티브 개념으로 암호화폐가 나왔다. 먼저 암호화폐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과세 등 규제를 해야 한다. 스위스는 처음에 시장에서 자율 규제를 하도록 한 뒤 규제 기관이 모니터링을 했다. 그 결과 자산형 토큰은 자본시장법으로 규제하고 지불형 토큰은 카드 등 자금 결제에 준하도록 했으며 유틸리티 토큰은 회사의 포인트 개념으로 다루도록 했다. 이어 크립토뱅크까지 허가했다. 홍콩·싱가포르·스위스·일본·영국·프랑스 등의 암호화폐 규제를 연구해 우리 상황에 맞게 조정한 뒤 빨리 정착시켜야 한다. 영국은 유럽에서 금융 허브 역할을 해왔으나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절차가 마무리된 뒤 프랑스와 독일이 허브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독일·일본 등은 투자자 보호와 과세 등을 이유로 암호화폐를 금융 상품으로 간주한다.
-디지털 금융 발전을 위한 국가 차원의 로드맵도 필요한데.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금융이 활성화되면 송금·대출·주식·보험·부동산 등의 직거래가 이뤄지며 중개자 역할이 축소된다. 우리나라는 IT 강국인데다 5세대(5G) 이동통신에서 앞서 있어 디지털 금융 분야에서 잘할 수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이 세계에서 5억 대가량 쓰이는데 S10 이상부터 전자 지갑이 깔려 있다. 국내 금융기관들이 이 전자 지갑 위에 금융 생태계를 만들어놓으면 디지털 금융 서비스를 할 수 있다. 우리가 아시아 금융 허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금융 신산업을 키우려면 (가칭)디지털금융산업진흥원이라는 컨트롤타워를 만들어 국가 로드맵을 마련해야 한다. 관련 인력을 양성하고 표준화를 시도하는 등 글로벌 진출을 위한 새 판을 짜야 한다.
-중국은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독려하고 있는데.
△해외에서도 달러 패권에 맞서 위안화가 널리 쓰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디지털 위안화 사용을 권장하는 것이다. 중국은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 기반인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와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화폐이므로 카드나 각종 페이를 쓰는 것과 다를 게 없지 않느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은행 계좌가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지금까지 은행은 계좌를 통해 모든 금융 서비스의 출입구로서 고객과의 접점을 독점했다. 하지만 스마트폰 앱에서 거래가 이뤄지면 직거래 서비스가 급증하면서 혁신 사례가 많이 생길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 활성화와 그에 따른 ‘토큰 경제’의 장점은 무엇인가.
△블록체인 기술은 해킹 방지로 신뢰를 보증하며 물류 혁신이나 부동산·금융 서비스 혁신, 행정 혁신, 전자투표 등 다방면으로 쓰일 수 있다. 중개인을 통하지 않고 부동산 직거래를 한다든지, 무역 서류를 블록체인 기술로 간편하게 대체하는 사례 등을 들 수 있다. 토큰 경제가 발전하면 삼성전자 주식을 소액주주들이 나눠 사는 것처럼 사람들이 새로 발행한 토큰으로 강남의 500억 원짜리 빌딩을 분할 매입해 임대 수입을 나눠 가질 수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임대주택을 지을 때도 세금을 일부 투입하고 국민들의 토큰 투자로 나머지 자금을 조달해 수익을 나눌 수 있다. 기존 기업도 포인트를 토큰으로 만들 수 있다. 페이스북은 2019년 우버 등 20~30개 사와 함께 ‘리브라’라는 암호화폐를 발행하려다가 미국 정부 등의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으나 올해 중 이름을 ‘디엠’으로 바꾸고 가치를 고정해 시험 출시하기로 했다. 토큰 경제가 활성화되면 소비자가 자신의 데이터를 돈을 받고 파는 등 데이터 주권을 확보할 수 있다.
He is...
1967년 서울에서 출생해 영동고와 고려대 전산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공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텍사스 A&M대에서 조교수를 지낸 뒤 2003년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로 부임해 2014년부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연구했다. 초대 한국블록체인학회장,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 금융감독원 블록체인자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현재 고려대 블록체인연구소장으로 20여 명의 교수와 함께 연구하고 있다. 서울시 블록체인자문위원, 금융보안원·한국예탁결제원·전국은행연합회 자문위원 등도 맡고 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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