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고갈 시기가 해마다 앞당겨지고 있지만 정부는 연금 개혁에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정부가 지난 2018년 국회에 제출했던 연금 개혁안이 여론에 떠밀려 흐지부지된 뒤로는 정부와 국회가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9일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현행 제도가 지속될 경우 국민연금 적립금은 오는 2038년 1,344조 6,000억 원으로 줄어든 뒤 2039년에 적자로 전환하고 2055년 소진된다. 기획재정부가 2015년 장기재정전망에서 추산한 국민연금의 적자 시기(2044년)와 고갈 시기(2060년)보다 각각 5년씩 앞당겨진 셈이다.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이 부양하는 수급자 수를 의미하는 ‘제도 부양비’도 2019년 기준 19.4명에서 2090년 116.0명으로 급격히 늘어난다.
정부와 국회는 그러나 여론의 눈치만 보며 연금 개혁을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소득의 9%인 현재 보험료율을 11~15%로 올리거나 기초연금을 현행 2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올려 정부가 세금으로 부담하는 복수의 국민연금 개혁안을 마련했다. 하지만 여론의 반발이 커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이 기대하는 수준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물러섰다. 홍남기 국무총리 직무대행 겸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국회에서 국민연금 고갈과 관련해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대신 보험료율을 올려야 한다”며 “보험료율 변동 없이 소득대체율을 높이는 전제라면 적자 폭이 빠르게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이에 야당인 국민의힘은 “청와대와 정부가 여론 눈치를 보다 이제 와서 보험료율을 올리겠다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공무원연금 등 다른 공적 연금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기금은 이미 고갈돼 2019년 기준 3조 6,000억 원 수준의 연금 지급 부족분을 매년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사학연금은 2029년 적자로 전환해 2049년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회보험의 재정 상황도 녹록지 않다. 건강보험재정은 2019년부터 5년간 누적 적자가 9조 5,148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건보 잉여금은 2018년 20조 5,955억 원에서 2023년 11조 807억 원으로 5년 만에 반 토막 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보험 기금은 2018년 적자로 돌아섰고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으로 실업급여가 대규모로 지급돼 적자 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삼식 한양대 정책학 교수는 “연금 개혁 논의를 꺼낼 때마다 사회적 논란이 커져 주춤하고 있지만 문제가 계속 누적된 뒤 개혁을 하는 것은 더 어렵다”며 “전면 개혁이 당장 어렵다면 계속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고 연금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