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재정법·세무사법 등 시급한 법안들이 여야 간 이견으로 처리가 밀리며 행정 공백 우려까지 나온다. 특히 세무사법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관련 법이 개정되지 못하며 700여 명의 세무사들이 지난해 세무시험에 합격하고도 등록을 하지 못하고 있다.
26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기획재정위원회는 21대 국회 들어 접수된 918건의 법률안 중 190건을 처리했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여야 간 이견이 없는 무쟁점 법안들로 여야가 부딪힌 법안들은 한 건도 처리하지 못했다.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약 2년간 입법 공백 사태를 만들고 있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헌법재판소가 지난 2018년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가 세무 대리 업무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 세무사법 조항이 헌법에 어긋난다’고 결정, 세무사에게 등록 번호를 주는 조항이 효력을 상실하며 세무사들은 새로운 법령에 따른 등록 등의 절차가 이뤄져야 한다. 헌재는 2019년 12월까지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개정하도록 했지만 개정안은 20대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했고 현재는 야당의 반대에 가로막혀 있다.
쟁점은 세무사 자격을 보유한 변호사의 세무 대리 업무 범위다. 기장(회계장부 작성)과 성실 신고 확인 업무를 제외하고 세무 대리 업무를 허용하는 개정안에 대해 야당은 변호사 업무에 제한을 둬서는 안 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개정안은 아직 소위 문턱도 넘지 못한 상태다. 정부는 다음 달 국회가 열리면 기재위가 개정안을 처리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예규 등을 통해 임시 등록이 가능하도록 해놓았지만 이 상태로 계속 갈 수는 없다”며 “20대 국회부터 충분한 논의가 이뤄진 만큼 법령상 빨리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재정건전성 악화를 막겠다는 재정 준칙도 여야 모두의 관심에서 벗어나 방치돼 있다. 지난해 9월 국가 재정법 정부안이 제출된 뒤로 기재위 소위에서 법안 심의가 이뤄진 적은 한 번도 없다. 기재부가 발표한 재정 준칙의 핵심은 오는 2025년부터 매년 국가 채무 비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60% 이내, 통합 재정 수지를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것이다. 여당은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의 적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야당은 더 엄격한 준칙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재정 준칙의 국회 통과 여부와 관계없이 재정 운용상 이를 반영하겠다”고 밝혔지만 그 한계는 명확하다. 정부의 의지에 기댄 만큼 대내외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내년 대선 이후 정부가 바뀌면 준칙 적용을 나 몰라라 할 가능성도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 교수는 “경기가 회복되는 상황에서 지금과 같은 재정 적자를 지속할 수는 없다”며 “재정 준칙 입법 논의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10년째 국회에 표류 중인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은 쟁점이었던 보건·의료 분야를 걷어내고 필수 절차인 공청회까지 거쳤지만 아직도 기재위에 계류 중이다. 코로나19로 서비스 산업이 직격탄을 맞은 상황에서 서비스 업계는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서발법 통과를 바라보고 있지만 깜깜무소식이다. 2012년 기재부 정책조정국장 시절 서발법 정부안을 만들었던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제는 소모적 논쟁을 끝내고 문제 해결을 위해 발상을 전환하는 ‘우직지계(迂直之計)’의 지혜를 발휘할 때”라며 “보건 의료 분야도 포함되는 것이 소망스럽지만 일단 서발법의 빠른 입법화가 긴요한 만큼 이를 제외하고라도 최대한 조속히 입법돼야 한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정부는 서발법 통과를 전제로 2025년까지 서비스업에서만 일자리 30만 개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종=박효정 기자 j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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