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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한 번도 경험 못한 '홍백기 재정'

권구찬 선임기자

3년간 300조 적자낸 나라곳간 지기

초과 세수분까지 결산도 하기 전에

미리 앞당겨 탈탈 털어먹겠다니…

이게 '최장수' 타이틀 값어치인가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두 개의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역대 최장수 경제 정책 수장이라는 타이틀이 첫 번째이고, 두 번째는 나랏돈을 가장 많이 푼 곳간지기다. 홍 부총리가 취임한 이후 3년간 재정 적자는 올해 1차 추경분까지만 합쳐도 292조 원(54조 원+112조 원+126조 원)으로 예상된다. 이는 14년 연속 재정 적자의 출발점인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누적 적자액의 1.2배쯤 된다. 두 기록은 떼려야 뗄 수 없다. 재정 파수꾼으로서의 소신을 접었다 해서 ‘홍백기(홍남기+백기)’ 또는 ‘홍두사미(홍남기+용두사미)’라는 오명이 그래서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기획재정부 출신 전직 경제부처 장관이 사석에서 “기재부의 망신”이라며 개탄했지만 ‘청와대 정부’라는 고질을 생각하면 지나친 혹평이다. 한직에 있던 그를 중용한 전직 경제 사령탑은 “윗사람 뜻을 거역하지 않고 잘 따른다”고 했다. 이게 정확할 것이다.

2018년 12월 10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은 뒤 문재인 대통령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홍 부총리는 이달 초 올해 2차 추경 편성을 공식화해 ‘예스맨’의 진면목을 또 한 번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말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재정 동원령을 내린 지 8일 만이다. 비단 추경만이 아니다. 내년 예산안도 확장 재정 추세를 이어갈 것임을 예고했다. 코로나19 사태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정권 말 나랏돈을 이렇게 펑펑 써도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태껏 퍼주기에 이골이 났으니 막판에 좀 더 푸는 게 무슨 대수냐고 생각할까. 아니면 내년 강원도 지사 선거가 어른거리는 걸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재정 운용은 이쯤에서 끝내야 한다.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은 각각 4%와 3% 안팎으로 잠재성장률을 훨씬 뛰어넘는다. 나랏돈으로 경기를 자극할 명분부터 약하다. 경기 온풍이 골고루 퍼지지 않았다는 이유는 핑곗거리가 못 된다. 양극화 해소는 재정을 덜 쓰고 더 쓰고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구조 개혁이 관건임은 불문가지다. 더구나 확장적 재정 정책은 다가오는 인플레이션 압력 대처엔 상극이다. 나랏돈을 풀어 설령 가계의 지갑이 두툼해져도 소비자물가가 오르면 말짱 도루묵이다. 현 정부가 전가의 보도로 삼는 소득 주도, 포용 성장에는 인플레이션이 최대 공적이다. 한국은행은 이미 긴축의 깜빡이를 켰다. 한쪽에서는 돈을 풀자고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돈을 거둬들이려는 희한한 상황을 국민이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감나무 홍시를 다 따지 않고 몇몇은 남겨두는 게 우리의 미덕이었다. 재정 건전성 악화가 미래 세대의 세금 폭탄이라는 먼 얘기를 할 것도 없다. 역대 정부의 임기 말 재정 운용을 보더라도 까치밥 전통은 이어져왔다. ‘큰 정부’를 지향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흑자 재정을 이뤄 차기 정부의 부담을 덜어줬다. 이명박 정부는 임기 내내 재정 적자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임기 말 균형 재정 달성을 정책 목표로 세웠다는 것은 평가 받아야 한다. 당시 박재완 기재부 장관은 2012년 말 박근혜 전 대통령 당선인 측의 추가 국채 발행 요구를 끝까지 거부해 나라 곳간지기의 전형을 보여줬다. 박근혜 정부는 임기 마지막 해인 2017년도 예산을 짤 때 지출 증가율 (3.7%)을 수입 증가율(6.0%) 이내로 억제했다. 이때의 긴축은 현 정부 출범 직후의 일자리 추경 편성에 여력을 남겨줬다.

내년 예산은 현 정부에서 편성하지만 집행은 차기 정부의 몫이다. 세수가 더 걷힌다고 결산도 하기 전에 한 톨 남김 없이 탈탈 털어먹겠다는 것은 ‘홍백기 재정’의 극치다. 최장수 타이틀의 값어치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된다는 말인가. 지난해에도 덜 쓴 세계잉여금이 있었지만 국가재정법에 따라 지방 재정 확충과 국가 채무 상환, 차기 예산 편입에 썼다. 홍 부총리더러 이제 와서 돈 풀기 요구를 박재완 전 장관처럼 ‘포크배럴(돼지 먹이통)’로 맞받아쳐야 한다는 건 무리한 주문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염치가 있다면 최소한 까치밥은 남겨둬야 한다. 정권은 내년이면 끝나지만 정부는 계속되니 하는 말이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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