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철민 경제부 기자
“에너지 차관 신설 법안의 국회 통과가 지연되면서 산업통상자원부의 정책 수립에 힘이 붙지 않는 상황입니다.”
최근 만난 산업부의 한 관계자는 3월은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에너지 차관제 재도입이 여야를 오가다 진척 없이 미뤄지자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쉬었다. 에너지 차관 직제가 추가되지 않으면 산업부의 에너지 관련 인력 증원은 물론 정책 수립과 추진력에 상당한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에너지 차관 신설을 골자로 한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 상정을 남겨두고 있지만 이달 국회 통과도 요원한 상황이다.
사실 에너지 차관 신설에 대해 세간의 시선이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부 부처에서는 산업부가 1차관 및 정부조직법상 차관인 통상교섭본부장까지 산하에 둔 상황에서 에너지 차관까지 꿰찰 경우 ‘공룡 부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야권에서는 에너지 차관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뒷받침하다 고초를 겪은 ‘산업부 달래기용’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시야를 조금만 넓혀보면 에너지 차관 설립은 탄소 중립 등 한국 경제의 미래 비전과 직결된 사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탄소중립 범부처 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에너지 전환 정책이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도록 산업부에 에너지 전담 차관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에너지 차관 신설을 공식화했다. 탄소 중립이 에너지와 제조업 전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만큼 산업부의 역할 확대가 필요하다는 주문은 이전부터 있었다.
실제 탄소 중립이 정밀한 고려 없이 추진될 경우 철강·석유화학 등 주요 산업의 가동 중단 사태는 물론 석탄발전소 가동 중단에 따른 ‘블랙아웃(대정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수출 중심형 산업 구조가 여전한 한국 경제가 글로벌 탄소 중립 행렬에서 빠지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졸면 죽는다’는 말은 산업 생태계가 빠르게 바뀌는 실리콘밸리에서 통용되는 격언이었다. 지금은 각국의 탄소 중립 선언과 수소경제 전환으로 에너지 산업이 ‘졸면 죽는’ 생태계로 바뀌고 있다. 에너지 차관 신설 지연으로 한국의 산업 대계가 발목 잡힌 사이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들은 이미 몇 발 앞서 뛰고 있다. 시간이 없다. /chopin@sedaily.com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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