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중구 명동역 6번 출구에서 시작해 소공동 롯데백화점 건너편 눈스퀘어로 꺾이는 명동의 ‘십자(+) 상권’. 명동 중의 명동으로 불리며 월 임대료만 수억 원에 달했던 이 거리는 코로나19 2년 만에 10곳 중 4곳은 장사를 포기한 채 불을 꺼버린 암흑의 거리로 변했다. 13일 찾은 명동 거리는 땀이 삐질삐질 나는 한여름 날씨와 달리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초입부터 곳곳의 1층 상가에는 ‘임대 문의’ 딱지가 나부끼고 있었고 그나마 문을 연 곳은 손님이 없어 적막함만 흘렀다. 전날부터 시작된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여파에 식당가도 비교적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은 주변 상가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빠르게 지나쳐갔다. 화장품을 판매하는 한 상점 주인은 “명동은 한마디로 망했다”며 “그나마 문을 연 곳들도 임대계약만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씁쓸해했다.
대한민국 상권 1번지 명동이 쇠락하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주요 고객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뚝 끊기자 유동 인구가 급격히 줄면서 곳곳에 빈집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아리따움·후아유·유니클로 등 대형 패션·뷰티 매장들이 하나둘 문을 닫더니 급기야 인근 호텔들도 영업을 접고 매물로 쏟아지고 있다. 그나마 인근 직장인들로 근근이 이어가던 식당들도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강화로 줄폐업의 위기에 처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에 의존해오던 명동이 그야말로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이다.
명동의 공실률은 매 분기 역대 최대치를 쓰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명동의 중대형 상가 공실률은 38.4%로 코로나19 초반이던 지난해 1분기 7.4% 대비 크게 뛰어올랐다. 외국인에 의존했던 상권 특성뿐 아니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내국인 고객도 발길을 끊으면서 순식간에 공실이 넘쳐난 것이다. 실제 경기 악화에 따른 매출 타격은 그 어느 상권보다 컸다. 서울시가 150개 주요 상권의 매출을 전년과 비교한 결과 지난해 명동은 62.8%가 떨어져 평균치인 36.4%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명동은 K뷰티로 명성을 떨치면서 화장품 매장이 한 집 건너 한 집을 차지할 정도로 많았다. 코로나19 이전까지만 해도 동일 브랜드가 명동 거리에 6개까지 매장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 2017년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보복 조치에도 끄떡없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뷰티 편집숍 아리따움의 철수를 시작으로 네이처리퍼블릭·바닐라코·토니모리 등 명동에서만 매장을 2~3곳 이상 운영하던 브랜드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지금은 전체의 80% 정도가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패션도 마찬가지다. 과거 패션 브랜드들의 대표 플래그십 매장이 즐비했던 명동 거리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스웨덴 패션 브랜드 H&M의 국내 1호 매장인 명동눈스퀘어점이 지난해 11월 철수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4층 규모의 유니클로 명동점이 영업을 종료했다. 이 외에도 에이랜드·후아유·게스·에잇세컨즈 등 굵직한 패션 매장들이 모두 명동에서 자취를 감췄다.
호텔도 줄지어 명동에서의 영업을 포기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끊긴 데 더해 내국인들의 발길조차 뜸해지면서 상권이 악화되자 호텔보다는 오피스나 주택 상품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이다. 이번에 매물로 새롭게 등장한 나인트리 명동2를 비롯해 롯데시티호텔 명동, 티마크그랜드호텔, 스카이파크 명동센트럴 등도 새 주인을 찾고 있다. 호텔업계의 한 관계자는 “명동 상가의 대규모 공실로 접근성 메리트가 떨어지고 있다”며 “공실 대란이 계속될 경우 관광지로서의 매력이 사라져 호텔들의 철수가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명동 상권의 악화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명동의 임대료는 여전히 높아 자영업자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올해 1분기 명동 중대형 상가의 평균 임대료는 1㎡당 월 22만 5,000원으로 전국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지난해 1분기(29만 7,000원) 대비 약 24% 낮아지기는 했지만 같은 기간 공실률 증가 폭과 비교하면 하락 폭이 작은 셈이다. 명동 임대료는 강남 평균 임대료 5만 8,000원보다도 4배가량 높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 돌입으로 회복의 길이 더욱 요원해진 상황에서 큰 폭의 최저임금 인상까지 단행되면서 더욱 막다른 길로 몰리고 있다. 명동에서 옷을 파는 한 상점 주인은 “임대료와 인건비 부담이 크다”면서 “그나마 줄인 직원들도 내년 최저임금에 맞추려면 해고해야 할 판”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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