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가 열돔(heat dome·고기압이 정체하며 뜨거운 공기를 대지에 가둠) 현상으로 인한 폭염 사태가 우려되는 가운데 지구촌 곳곳에서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북미 서부의 폭염과 유럽 서부와 중국 서부의 폭우가 단적인 예다. 지난해 미국 서부, 남미 아마존, 호주,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심지어 시베리아까지 대형 산불이 끊이지 않았고 올 초에도 미국이 기록적인 한파에 시달렸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구촌이 코로나19 사태로 허우적대는 상황에서 기후위기라는 더 큰 적을 맞아 신음하는 형국이다.
폭염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다. 세계 35개 기관으로 구성된 ‘랜싯 카운트다운’이 의학저널 랜싯에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2018년 연평균 폭염으로 숨진 65세 이상은 2000~2004년에 비해 54%나 급증했다. 2018년의 경우 65세 이상 중 30만 명 가까이 폭염으로 숨졌다.
문제는 앞으로 폭염이 더 강해지고 기간도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는 점이다. 미국·유럽·한국 등이 오는 2050년,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 배출과 저감 수치를 맞춰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이나 앞으로 수십 년간 기온 상승을 막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최근 유엔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내년 2월 발표할 보고서 초안을 통해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이 대규모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보고서 초안은 현재 비공개 상태다. IPCC는 지구 평균온도가 지금보다 0.4도(산업화 시대 이전보다 1.5도) 상승할 경우 인류의 14%가 5년마다 최소 한 번씩 극심한 폭염에 노출될 것으로 봤다. 그 피해는 중국 중부,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이남 지역에서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앞서 IPCC는 2030~2052년에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1.5도 상승할 것이라고 2018년 보고서에서 예측했다.
실제 북미(미국·캐나다) 서부 지역은 지난달 중순부터 ‘100년 만의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최고기온이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인해 수백~수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앞서 2003년 서유럽 폭염 사태 때는 5만 명 이상이 숨졌다. 당시 심혈관 질환 환자의 사망률은 다른 시기에 비해 30%나 급증했다. 2015년 인도·파키스탄에서는 폭염으로 4,000명 이상이 숨졌다. 윤수영 인천 한림병원 응급의학과장은 “폭염이 계속되면 열사병·탈수증은 물론 심장질환·당뇨병·고혈압·호흡기질환·경련·뇌졸중 등으로 사망자가 늘어나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는 폭우도 몰고 온다. 기온이 1도 올라갈 때마다 습기가 7% 더 많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최근 중부 황허강 아래 허난성의 성도인 정저우에서 물 폭탄이 떨어져 지하철 승객 등 30명 가까이 숨졌으며 20여만 명의 주민이 대피했다. 이달 13~14일 독일 서부와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등에 쏟아진 엄청난 폭우로 발생한 사망자도 수백여 명에 달한다. 심지어 우베 키르셰 독일 기상청 대변인은 “1,000년 만의 폭우”라고 표현했다. 독일의 경우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후 2도나 급등했고 중국의 온도 상승세도 무섭다. 이에 따라 슈퍼컴퓨터조차 독일 등 유럽 대홍수, 북미 서부 폭염을 예측하지 못했다. 마이클 E 맨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지구과학센터 소장은 “현재 (기상 예측) 모델은 극단적 기상 현상을 분석할 때 기후변화 충격의 정도를 과소평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북극이나 알프스 등에서 기후변화 징후가 뚜렷해 위기감을 더하고 있다. 마지막 해빙권(Last Ice Area)으로 불리는 그린란드 북부 반델해의 해빙이 지난해 여름 배가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녹은 게 단적인 예다. 시베리아 숲이나 알래스카에서는 대형 화재가 더 자주 발생하고 있다. 번개가 거의 치지 않던 북극에서 최근 대류열이 증가하며 번개 현상이 잦아진 것도 심상치 않다. 중국 란저우대의 펑샤오칭 박사팀이 미국지구물리학회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얼음과 눈으로 덮인 지구의 ‘빙권(cryosphere)’이 지구온난화로 인해 1979~2016년 연평균 8만 7,000㎢씩 감소했다. 태양 빛을 반사해 온도를 낮추는 빙권이 매년 우리나라 면적의 90% 가깝게 사라졌다. 펑 박사는 “빙권 감소는 북반구에서 진행되고 남반구에서는 오히려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 수생과학기술원에 따르면 알프스의 빙하가 녹으면서 최근 10년간 스위스 내 호수가 약 180개 증가했다. 소빙하기인 1850년부터 따지면 2016년까지 스위스 알프스에 약 1,200개의 호수가 만들어졌다. 이 연구소의 다니엘 오더마트 박사는 “기후변화로 알프스의 호수 형성 속도가 빨라져 놀랐다”고 했다. 이상기후는 동식물 생태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최근 IPCC 보고서 초안에서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2~3도 높아진다면 육상과 바다 생물종의 최대 54%가 멸종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봤다. 경제 측면에서는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4도 폭등한다면 세계 국내총생산(GDP)이 10~23%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바닷물 범람으로 존폐 위기에 처한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은 최근 “몰디브와 같은 작은 섬나라든 서유럽 선진국이든 어디에서나 누구나 기후위기에 위험하다”고 우려했다.
유영숙 기후변화센터 이사장은 “북극의 빙하가 녹으며 적도와 극지방의 온도차가 줄어들고 있고 강한 공기 흐름인 제트기류 약화로 지구촌 곳곳에서 폭염·폭우·가뭄·혹한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이미 산업화 이전보다 1도 이상 상승했는데 온실가스를 줄이고 2050년 탄소 중립을 필히 이뤄야 한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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