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사 피치가 22일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기존 2.5%에서 2.3%로 낮췄다. 피치는 “급속한 인구 고령화가 한국의 중기적인 성장에 압력을 주고 있다”며 “인구 측면의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한국의 잠재성장률 추정치를 하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피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무디스 등 3대 신용평가사는 정부나 기업이 제때 돈을 갚을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신용평가사가 구체적인 수치를 거론하며 잠재성장률을 평가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한국의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그만큼이나 이례적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84명이었고 서울의 합계 출산율은 0.64명에 불과했다. 인구문제를 연구하는 한 교수는 “합계 출산율이 1 이하로 내려간 나라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0.64는 외국인들이 도저히 믿지 못할 숫자”라고 평가했다.
급격한 고령화는 재정 부담과 직결된다. 사회보장위원회의 중장기 사회보장 재정 추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12.5%였던 사회보장 지출은 2060년 27.6%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만큼 복지 지출 증가 속도도 빠르다. 우리나라의 복지 지출 비중은 1990년에서 2019년까지 4.1배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여권에서는 주요국 대비 낮은 국가 채무 비율을 들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확장 재정을 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의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차기 정부 임기 내 청년에게 연 200만 원, 그 외 전 국민에게 연 100만 원씩 지역 화폐 형식으로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지사 추산 임기 내 연간 59조 원이 드는 현금 퍼주기 공약이다. 이 공약이 여야 대선 주자들의 포퓰리즘 경쟁에 불을 붙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번 추경에서 전 국민 지원금 지급을 막고 2조 원의 국가 채무 상환을 어렵게 지켜냈다. 하지만 대놓고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정부가 들어섰을 때 곳간지기가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고령화 지출 압력이 있는 상황에서 국가 채무 증가는 재정 운용상 위험 요인’이라는 피치의 경고를 모두가 새겨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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