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도 싫고 내가 번 돈으로 먹고 싶은 것 먹고 여행하면서 사는 자유가 좋죠. 결혼요? 안 할 것 같아요.” MZ세대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장 모(24) 씨는 주변에서 결혼 이야기를 꺼내면 고민 없이 하지 않겠다고 선을 긋는다. 결혼을 꼭 하고 애를 낳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을 뿐 아니라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경제신문이 창간 61주년을 맞아 1990년대생 청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도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장 씨 또래 세대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났다. 앞으로 결혼을 할 의향이 있냐는 질문에 결혼하지 않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29.6%를 차지했다. 1990년대생 10명 중 3명은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셈이다. 특히 남자(22.7%)보다 여자(37.3%)가 더 결혼 의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생이 결혼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를 불문하고 응답자 절반이 ‘미혼으로 사는 게 더 행복해서’라는 답을 골랐다. 과거와 달리 가족을 반드시 구성해야만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닐 뿐 아니라 도시 자체가 젊은 나이에 혼자 살기 편한 환경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거주지·소득·직업과 무관한 현상으로 나타났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결혼·출산·육아라는 것이 매우 힘든 구조이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파트너로 보기보다는 넘어야 할 경쟁 대상으로 보니까 점점 더 결혼을 꺼린다”며 “미혼이 행복할 것으로 보는 것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려는 심리가 반영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다만 미혼이 더 행복할 것이라는 답변을 제외하면 남녀 차이가 뚜렷하게 발견된다. 남자는 결혼을 피하는 이유를 일자리 불안(15%),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11.7%), 주거 불안(10.0%) 순으로 꼽았다. 반대로 여자는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이 27.3%로 높은 수준이었고 일자리 불안(5.7%), 배우자 가족과의 갈등(4.5%) 등이 뒤를 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주거 불안을 선택한 여성 응답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것이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가정 내 여성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는데 사회나 기업 등 조직에서는 바뀌지 않고 여전히 남성 중심적 가부장적인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며 “이에 대한 여성들의 부적응이나 반발 등으로 새로운 결혼관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혼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혼과 출산을 계획하기 어렵다’라는 항목에 95%가 동의하면서 경제적 측면에 예민한 모습을 보였다. 결혼·출산을 마땅히 해야 하는 당위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비율도 20~30%에 그쳤다. 이러한 인식은 우리나라 출산율 하락의 근본 원인을 묻는 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응답자 40.2%는 ‘결혼이 필수가 아닌 개인 선택이라고 보는 인식 변화’로 인해 출산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봤다. 부동산 가격 폭등(20.2%)과 취업난으로 늦어지는 취업 연령(16.2%) 등 경제적 이유가 뒤를 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겠다고 할까. 1990년대생은 남녀 모두 주거 안정 대책(48.2%)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하지만 집 문제를 제외하면 남녀 생각은 크게 갈렸다. 남자는 청년 일자리 확충이 22.7%로 높은 대신 양성평등 실현은 3.8%에 그쳤다. 반면 여자는 양성평등 실현이 28.4%였고 청년 일자리 확충은 9.3%로 나타났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자는 저소득층일수록 주거 불안이나 일자리 불안 등 경제적 이유로 결혼을 포기하고 여자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직장 내 차별이나 가사 노동 불균형 등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는다”며 “다만 1990년대생 모두 연애를 포기하고 결혼하지 않겠다고 볼 수는 없는 만큼 주거나 고용 불안 등 사회적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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