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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 부풀리고 이제 와서 상투 경고라니…부끄럽지 않은가”

[권구찬 선임기자의 청론직설]

◆한상완 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

규제로 주택 공급 막혀…정부의 시장 교란이 만든 버블

팬데믹 쇼크는 경기 사이클 왜곡, 인플레이션 압력 축적

미국發 긴축 쓰나미의 약한 고리 부동산시장 충격 클 것

2030세대 ‘영끌’ 대출 부실화, 사회적 문제로 비화 우려

한상완 전 현대경제연구원 대표는 “현재의 수도권 집값은 정책 실패가 만든 버블”이라며 “미국의 통화 긴축 쓰나미가 몰려오면 ‘영끌’한 2030세대의 대출 부실화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권욱 기자






“부동산 가격 잡으면 피자 한 판 쏘겠다.” 4년 전인 지난 2017년 7월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초청 기업인 간담회에서 한 발언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 종료가 10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이지만 집값 폭주는 멈출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 정부 출범 후 4년 동안 전국 아파트 가격(KB 기준)은 27% 급등했고 서울의 상승률은 52%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최근 부동산 가격이 ‘고점’에 가까워졌다는 상투론을 연일 들먹이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대표를 지낸 한상완 2.1지속가능연구소장은 28일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대국민 담화 형식으로 집값 고점을 재차 경고한 데 대해 “화부터 난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한 소장은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버블을 만든 장본인이 이제 와서 거품 운운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성토했다.

-불과 1~2년 전 디플레이션 리스크를 걱정했는데 지금은 반대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첫 번째는 지난해 말 시작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이다. 철광석과 석유·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이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다. 두 번째는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인한 유동성 파티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과거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의 세 차례 양적완화(QE)보다 더 많은 달러를 풀었다. 델타 변이 바이러스라는 변수가 등장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된다면 억눌린 소비마저 늘어나게 된다. 팬데믹이 진정되면 ‘보복 소비’로 인한 수요 견인(demand pull) 인플레이션 압력까지 겹칠 것이다. 세 가지 요인이 결합하면 2000년대 들어 실종되다시피 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활화산처럼 폭발할 수도 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지난 15일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인플레이션이 오래간다면 그 위험성을 재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 연준의 입장은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라는 것인데.

△연준은 말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일시적 현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다가 최근 물가 상승이 ‘예상보다 높고 약간 더 지속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올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4%였다. 물가 안정 목표치의 3배에 육박한다. 추세적으로 상승세여서 기저 효과로는 설명할 수 없다. 5월 초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약간의 금리 상승이 미국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옐런 장관의 발언은 긴축 시계를 보는 연준을 지원사격한 것으로 봐야 한다.

-델타 변이라는 돌발 변수가 등장했는데.

△방역 문제여서 경제적 영향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부정적 영향을 주겠지만 거시경제 흐름 전체를 바꿀 정도까지는 아니다. 세계경제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은 백신을 통한 방역에서 가장 뛰어나다. 분명한 것은 이번 팬데믹이 과잉 유동성과 결합해 글로벌 경제에 버블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산 버블을 말하는 것인가.

△비단 자산 버블만이 아니다. 버블은 과잉 수요를 말한다.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저축률은 장기 평균이 5% 정도이지만 지난해 15%를 넘어섰고 올해는 10% 초반에 이른다. 소비의 시계가 멈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팬데믹이 끝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되면 갇혀 있던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자산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는 한때 글로벌 증시에 조정을 가져왔지만 버블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팬데믹은 경기 사이클과 시간의 왜곡을 가져왔다.

-미국은 물가 상승률이 상당히 높은데도 금리 인상 예상 시점이 오는 2023년쯤으로 늦은 편이다.

△경기회복이 아직은 미약하고 고용 시장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 미국은 이제 막 경기회복 국면에 들어갔기 때문에 인플레이션 압력이 증가하더라도 최대한 버틸 것이다. 미국은 재정과 통화정책 양 방향에서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옐런 장관은 연준 의장 시절 주창한 ‘고압 경제’를 임계점까지 밀어붙여 인플레이션에 의한 경기회복을 도모할 것이다.

美, 금리 인상 돌입하면 무서운 속도로 올려


-반대로 말하면 미국의 긴축 선회가 글로벌 경제에 줄 충격이 클 것이라는 의미인데.

△연준은 금리 인상 기조에 들어서면 무서운 속도로 올린다. 점도표(연준 위원들의 금리 전망)를 보면 연준은 제로 금리에서 2.25~2.5%까지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 만약 연준이 2023년쯤 금리 인상에 들어간 뒤 1년 동안 기준금리를 1%포인트 이상 올리면 미국 경제는 연착륙하겠지만 세계경제가 버티지 못한다. 미국은 1994년 한 해 동안 금리를 2%포인트 인상하면서 경기 거품을 걷어냈다. 하지만 그 후유증으로 멕시코 페소 위기부터 태국·한국 외환 위기, 러시아 디폴트에 이르기까지 환태평양 일대가 초토화됐다. 1990년대 기준 금리 2%포인트 인상은 현재 1%포인트 정도의 충격과 맞먹는다.

-우리나라는 외환 보유액 등 거시 건전성이 상당히 양호한 편인데.

△우리나라가 외환 위기를 걱정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이머징마켓 어딘가에서는 자본 유출로 문제가 터질 수 있다. 한국의 약한 고리는 부동산 버블이다. 부동산 시장은 2013년 바닥을 찍고 8년째 상승세를 타고 있다. 부동산 사이클은 과거에는 택지 개발부터 입주까지 7년 주기로 변동했지만 점차 단축되는 추세인데도 이번 활황은 이례적으로 길다. 현재의 수도권 집값은 언제 조정을 받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통상 10년 치 소득과 집값이 엇비슷하면 정상적으로 본다. 현재는 20년 치, 30년 치를 모아야 한다. 이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

-미국의 긴축 선회가 국내 부동산 버블 붕괴의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의미인가.

△그렇다. 연준의 긴축 속도에 따라 두 가지 시나리오를 예상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미국이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에 나서 선제적으로 인플레이션 통제에 나서는 경우다. 경기 과열을 조금씩 식혀가면서 완만한 금리 인상을 하면 국내 부동산 시장은 연착륙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미국이 인플레이션 방어에 적극 나서지 않고 ‘고압 경제’ 기조를 내년까지 그대로 끌고 간다면 긴축 속도는 매우 빠를 것이다. 2023년 인상 가능성도 연준 내부에서는 소수 의견일 뿐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실물경제와 자산 시장의 괴리가 크기 때문에 자산 버블 확대를 감수하더라도 후자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국내 집값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패닉 바잉’ 소 떼 몰 듯 깔때기 쳐놓고 몰아가


-정책 당국이 ‘집값 거품이 빠질 것’이라는 예측을 좋아할 것 같다. 정부는 ‘집값 고점’을 경고하고 있는데.

△부동산 시장을 이 지경으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인가. 정책 실패로 버블을 잔뜩 부풀려놓고 이제 와서 상투라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패닉 바잉’이라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평생 내 집을 마련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패닉 바잉’을 초래했다. 투자는 본인 책임하에 한다지만 패닉 바잉은 정부가 마치 소 떼를 몰듯 깔때기 쳐놓고 한쪽으로 몰아간 측면이 크다. 2030세대의 ‘영끌’ 부실화는 사회적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무책임하게 버블 운운할 게 아니다. 사과부터 하고 생애 첫 집을 영끌한 젊은 세대가 겪을 고통을 덜어줄 비상 시나리오를 마련해야 한다.

-거품은 붕괴할 수 있지만 서서히 빠질 수도 있다.

△집값은 지금보다 조금 더 오르겠지만 그 이후 낙폭은 훨씬 클 것이다. 부동산은 주식과 달리 가격 하락 기대 심리가 시장에 팽배하면 매수세가 실종되고 매물이 매물을 불러 급락하는 특성이 있다. 자본 시장처럼 대형 기관투자가 등 ‘시장 조성자’도 없어 떨어지는 가격을 지지할 수도 없다. 미국이 급격하게 금리를 인상하면 부동산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다. 집값만 하락하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2003년 신용카드 대란 이후 이렇다 할 가계의 구조 조정, 다시 말해 부채 감축이 없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미국과 유럽·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가계의 디레버리징(빚 감축)이 광범위하게 진행돼온 것과 대비된다. 우리나라의 총부채 대비 원리금상환비율(DSR)과 처분 가능 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선진국 최고 수준이다. 다른 나라에 없는 전세 대출을 고려하더라도 가계 대출 지표는 온통 적신호 일색이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지난 2017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4년 동안 서울 집값 상승률(KB 기준)은 52%에 이른다. 서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광경. /서울경제DB


-한국은행이 긴축 깜빡이를 켰다. 미국보다 먼저 금리를 인상한다면 급격한 거품 붕괴를 막는 완충 효과가 있지 않겠는가.

△한은은 이주열 총재가 퇴임하는 내년 3월까지 한두 차례 금리를 인상하겠지만 부동산 가격에 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닐 것이다. 거품이 더 끼는 것 정도는 막을 수 있다. 연말 대선 국면에 돌입하면 금리 인상이 쉽지 않다. 한은의 금리 인상 속도는 결국 연준의 긴축 속도에 달려 있다.

-부동산 시장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것인가.

△시장 사이클이 완전히 망가졌다. 장기 저금리 효과가 있었지만 단연 정책 실패 탓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에 집값이 들썩이는데도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며 수요 억제 일변도로 일관했다. 불난 집에 부채질한 꼴이다. 부동산 세제를 강화하면서 기존 주택의 매물 잠금 현상을 초래했다. 신축 공급은 줄고 구축(기존 주택) 매물은 막혔다. 정부가 시장을 교란해 만든 버블이다. 수요 억제에 앞서 공급 확대를 추진했다면 이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못 막은 격이다. 지금이라도 구축 공급 확대부터 추진해야 한다.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He is…

1961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나 연세대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시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2년부터 민간 싱크탱크인 현대경제연구원에서 28년 동안 한국과 세계 경제를 연구했다. 연구원에서 경제 연구, 경영 전략, 산업 전략 등 주요 분야 본부장과 연구총괄본부장(전무)을 거쳐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올해부터 2.1지속가능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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