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공룡들이 자체 반도체 개발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삼성전자에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스템 반도체 1위 비전을 바탕으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고객 모시기’에 나선 삼성전자에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버추얼 연구개발(R&D)’ 모델, 5나노(㎚) 이하 첨단 공정으로 IT 회사들과의 협력을 늘릴 방침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최대 IT 기업 구글은 신규 스마트폰 ‘픽셀 6’에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텐서’를 탑재했다. AP는 스마트폰 내에서 각종 연산을 담당하는 두뇌 역할을 하는 칩이다. 그간 구글은 퀄컴 AP를 제품에 탑재해왔지만 이번에는 기성 AP를 쓰지 않으면서 칩 독립 선봉장을 자처했다.
구글 외에도 세계적인 IT 공룡들은 유행처럼 자체 칩을 개발하고 있다. 애플은 ‘탈인텔’을 선언하면서 자체 칩 M1을 개발, 지난해 11월 자사 맥북에 탑재했다. 테슬라도 전기 자동차 내에 스스로 개발한 완전자율주행(FSD) 칩 2개를 넣었다.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도 인텔 칩 대신 전자 기기에 들어가는 칩을 직접 설계하기로 했다.
칩 독립이 유행처럼 번져나가는 이유는 전자 기기 다양화와 성능 고도화로 각 회사에 딱 맞는 ‘맞춤 칩’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IT 회사들이 가상현실(VR) 및 증강현실(VR), 자율주행 등 차세대 산업을 육성하면서 칩 설계 인력에 공을 들이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다만 이들은 칩을 설계만 할 뿐 이를 생산하는 파운드리 라인을 보유하고 있지는 않다. 삼성전자·TSMC 등 주요 파운드리 업체에 위탁 생산을 맡긴다.
따라서 굵직한 IT 기업들의 칩 독립 사례가 늘어나는 트렌드는 파운드리 세계 1위 점유율을 노리는 삼성 파운드리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업계 예상이 나온다. 이미 삼성전자는 미국 페이스북·테슬라·시스코, 중국 바이두, 일본 소니 등 세계적인 IT 기업들의 칩을 대신 생산하거나 이들의 칩 개발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개별 고객사 주문이 늘수록 매출 발생은 물론 양산 사례까지 축적할 수 있어 향후 고객사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또 삼성전자는 각 IT 회사의 칩 독립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버추얼 R&D’라는 모델을 지원한다. 버추얼 R&D는 칩 설계부터 생산 이후 패키징까지 고객사 칩 생산 과정의 모든 과정을 밀착 지원한다는 콘셉트의 개발 모델이다. 또 에이디테크놀로지·코아시아·가온칩스·세미파이브·하나텍 등 14개 디자인솔루션파트너(DSP)와 협력해 설계 지원 역량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공정의 경우 최신 3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기반 ‘MBCFET’ 기술을 내년 양산에 적용해 최첨단 칩 설계에 대응할 방침이다.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은 최근 열린 한 포럼에서 “초기 개발부터 생산 단계까지 고객이 공정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유연한 기술을 구현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또 일각에서는 최근 인텔의 파운드리 사업 재개가 삼성에 다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인텔 대비 우월한 가격 경쟁력으로 고객사를 설득한다면 시장 영향력을 공고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다만 이를 실현하려면 첨단 공정 외에도 다양한 노드와 성능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한 국내 팹리스업체 대표는 “7나노 이하 공정 개선은 물론, 다양한 고객사에 대응할 수 있는 28나노 이상의 미들 엔드 공정도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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