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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비즈]현실 외면한 정책에 신음하는 주력산업

탈탄소 과속에 철강, 전기로 매몰비용 68조 달해

공정위 독단으로 해운사 배팔아 과징금 낼 판

중고차 규제에 20조 중고차 시장 ‘그림의 떡’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정책에 우리 주력 산업이 한숨을 짓고 있다. 기업들이 처한 현실과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그럴듯한 방향성만 제시한 채 정책을 추진하다 보니 부작용과 파열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잘못된 정책이 우리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기업들의 생존마저도 위협할 수 있다. 과속 탄소 중립에 철강과 화학 업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시대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에 해운사와 자동차 기업들도 시름이 깊다. 정교한 정책 수립이 필요한 상황이다.



◇과속 탄소중립에...철강, 전기로 매몰비용 68조 달해

탄소중립위원회가 철강 업계에 현재 운영 중인 용광로(고로)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해 오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95%까지 줄이라는 목표를 제시했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운영 중인 용광로 12대를 모두 전기로로 전환할 뿐 아니라 수소환원 제철 기술을 100% 도입해 코크스 생산용 유연탄을 수소로 대체하면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계산이다.

하지만 수소환원 제철 기술은 이제 ‘걸음마’ 수준이다. 상용화 시기가 아직 불투명하다. 일찌감치 연구에 나섰던 독일·스웨덴 등 유럽 선진국들은 이 기술의 상용화에 20~30여 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철강 업체들이 수소환원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려면 기존 용광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 전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매몰 비용이 발생한다. 업계에서는 이 매몰 비용이 68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는 자칫 철강 공장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탄소 누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의 기술로는 전기로에서 고급강을 만들기 어려워 전기차에 필요한 강판이나 선박용 후판을 만들 수 없다는 문제도 있다.

철강 업계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은 정부의 탄소 중립 과속은 유럽과 우리나라의 차이를 무시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철강 산업 역사가 긴 유럽은 설비가 낡고 조강 생산량이 우리보다 적어 공정 전환에 대한 부담이 크지 않다. 반면 한국의 조강 생산량은 세계 5위 수준으로 시설도 최근에 지어진 편에 속한다. 철강 업계의 한 관계자는 “제조업의 위상이 약한 유럽의 전략을 무작정 뒤쫒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상한 공정위 판단에...해운사, 8,000억 과징금에 배 팔아야 할 판

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혐의로 국내외 선사 23개에 과징금 부과를 추진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 5월 국내 12개 해운사와 해외 11개 선사에 한국~동남아 항로에서 운임 담합 행위를 했다며 과징금을 부과하겠다는 심사보고서를 냈다. 과징금 부과 규모는 8,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중소 선사 관계자는 “과징금을 내려면 보유 선박을 팔아야 한다”며 “가뜩이나 선박이 부족한 상황에서 정상적인 운항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공정위가 한국~동남아 항로뿐만 아니라 한국~중국, 한국~일본 항로 운임에 대한 추가 조사에 나설 경우 과징금 규모가 2조 원 수준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는 선사들이 운임이나 화물 적재 등 운송 조건에 대한 ‘공동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한 해운법과 배치된다는 게 해운 업계의 주장이다. 한국해운조합은 “공정위가 과도한 과징금을 부과할 경우 제2의 한진해운 파산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국적선사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항만 근로자의 대량 실직 사태나 각종 항만 부대 산업이 붕괴하는 등의 부정적 연쇄효과도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도 “과징금 부과는 정부가 추진하는 해운 산업 재건 정책에 정면 배치된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외국 주요 해운사들이 우리나라 화물을 거부하는 ‘한국 패싱’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운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해운업의 특성을 무시한 과도한 규제로 결국 중소 수출업체들만 피해를 볼 것”이라며 “대체 어느 나라 공정위인지 알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인증 중고차 제동에...자동차, 20조 시장 외제차에 내줄 판

현대차(005380)·기아(000270)가 인증 중고차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국내 중고차 업계의 반대와 정부의 미온적 대책으로 시장 진입에 애를 먹고 있다.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 6월 출범한 협의체 ‘중고차매매산업발전협의회’는 여전히 돌파구를 찾지 못한 상황이다.

시장 규모만 20조 원에 달하는 중고차 매매업은 지난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 신규 진출과 확장 등이 제한돼왔다. 하지만 국내 완성차 업체와 달리 수입차들은 중고차 사업에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있어 형평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다. 수입차 업체는 자체 기술 인력이 직접 품질을 검사하고 이를 통과한 차량을 사들여 재판매하는 ‘인증 중고차’ 사업을 벌이고 있다. 중고차 판매 수익뿐 아니라 자사 차량의 잔존 가치 방어와 신차 추가 할인 등으로 시장점유율을 꾸준히 높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전 세계 완성차 업계가 온라인 판매에 힘을 쏟고 있지만 국내 자동차 업체에는 그림의 떡이다. 현대차의 온라인 판매 시도는 정부의 무관심과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좌절됐다. 차량 판매 방식을 노조와 협의한다는 노사 간 단체협약 조항 탓에 도입이 쉽지 않았다. 온라인 판매를 늘리면 기존 판매량의 매출이 떨어진다는 이유를 들어 노조는 오프라인 이외 채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100% 온라인 판매를 고수하는 테슬라 등에 비해 현대차의 판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꾸준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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