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담합 혐의로 국내외 선사 23곳에 과징금 약 8,000억 원을 부과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사 간 공동행위를 허용하는 해운법에선 문제가 없다. 공정거래법도 다른 법에서 정한 ‘정당한 공동행위’엔 특별법을 우선 적용한다. 앞선 두 규정은 무시한 채 공정위는 ‘정당한 공동행위’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정거래법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정위가 문제 삼는 지점은 ‘화주 단체와 사전 서면 협의’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신고’ ‘공동행위 탈퇴를 제한하지 않을 것’ 등이다. 운임 담합 자체보단 절차적 문제다. 절차를 모두 지켰다는 선사들의 해명이 거짓이라도 해운법에 따라 처리할 일이다. 법률적 미비로 공정거래법이 끼어들 틈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선사 간 공동행위에 대한 소관을 명확히 하자는 것이 최근 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낸 해운법 개정안 요지다. 그동안 금지됐던 공동행위를 새롭게 허용해 해운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 아니다.
기업 간에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해야 한다는 공정위 설립 목적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해운업 특성을 무시한 채 원칙만 내세운 결과는 국가 경쟁력 훼손으로 이어졌다. 외환위기 직후 부채 비율 200% 이하라는 원칙만을 내세운 바람에 선사들은 모두 배를 팔았다가 다시 비싼 값에 빌려 쓰면서 고비용 구조가 정착됐다. 2016년 한진해운을 기업회생 절차로 보낼 때도 정기 컨테이너선사라는 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가 결과는 대규모 물류 대란으로 돌아왔다.
사안은 간단하다. 과징금 부과로 얻을 건 거의 없고 잃을 건 너무 많은데 원칙만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해수부에 운임 인상을 신고하지 않았다는 등 절차상 이유로 국가 기간산업이 무너질 만큼 과중한 과징금을 부과한 것이 답인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이미 원칙만 내세운 구조 조정으로 한진해운을 잃은 아픔이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