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의 갑작스럽고도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로 “부동산 가격을 올려놓고 대출 사다리도 걷어찼다”는 수요자 불만이 높아지는 가운데 금융사에서도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물론 가계 부채의 심각성은 인정하지만 금융사 자체 신용평가 시스템까지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신용대출은 연봉 이내, 마이너스 통장은 5,000만 원까지로 제한하는 게 과도하다는 것이다. 금융위원회가 카드론(장기 대출) 규제도 강화할 것으로 보여 타격을 입을 카드 업계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30일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가계대출 중 일부가 코인 등 투기 자금으로 쓰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관리가 필요한 상황인 것은 맞다”면서도 “그러나 그 방식은 은행 자율 규제에 맡겨야지 일괄적으로 신용대출은 연봉까지, 마통은 5,000만 원까지로 제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은행은 대출자의 리스크 등을 판별해 최적의 대출 한도와 금리를 산출하는데 일률적인 규제는 그동안 축적해온 신용평가 모델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마통은 다음 달 국민은행을 마지막으로 4대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 모두 최대한도가 5,000만 원으로 줄어든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연봉이 수억 원인 대출자도 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5,000만 원으로 일괄적으로 정하는 것은 과도한 규제”라고 말했다. 이는 비단 일각의 인식이 아닌 금융권 전반에 흐르는 정서다. 서울경제가 국내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38명에게 지난 10~18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시장 자율을 현저히 침해하는 정책’을 묻는 질문(최대 3개 복수 응답)에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39.5%로 최고 금리 연속 인하(47.4%), 카드 수수료 인하(42.1%)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카드 업계의 분위기도 뒤숭숭하다. 금융 당국은 최근 “느슨한 2금융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가 풍선 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없는지 살펴보고 보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했다. 대출자별 DSR 한도는 은행권이 40%, 비은행권이 60%이고 카드론은 내년 7월까지 규제가 유예됐다. 이에 대출자들은 은행에서 DSR 40%를 꽉 채워 대출을 받고도 자금이 모자랄 경우 카드론을 이용하고 있다. 금융사 간 규제 차이로 가계 부채의 양은 양대로 늘고 대출자가 높은 카드론 금리를 내며 가계 부채의 질은 질대로 나빠지는 실정이다. 이에 어떤 방식으로든 카드론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카드사의 한 관계자는 “금융사 간 규제 차익을 해소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카드사 입장에서도 잇단 카드 수수료 인하, 최고 금리 연속 인하로 수익성이 나빠진 상황에서 그나마 수익을 내던 카드론까지 타격을 입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농협은행·중앙회와의 형평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 은행의 한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하반기 일부 가계 담보대출을 중단한다지만 이미 상반기에 대출을 최대한으로 집행해 하반기에는 그만큼 이자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며 “반면 다른 금융사는 대출 총량 규제가 강화되며 상반기 대출을 조금 늘린 데 이어 하반기에도 공격적으로 늘릴 수 없게 됐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당국 눈치를 보며 가계대출 속도 조절을 한 곳이 되레 손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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