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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한일관계, 기업이 볼모 돼선 안된다

◆윤홍우 산업부 차장

산업부 윤홍우 차장




일본의 유서 깊은 소재 회사 스미토모화학이 최근 국내에 1,000억 원대 투자 발표를 한 것은 한일 관계에 있어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이 기업이 생산하는 포토레지스트는 일본이 우리에게 수출 규제를 한 대표적인 품목 중 하나로 꼽힌다.

스미토모화학은 앞으로 불화아르곤(ArF)용 포토레지스트를 국내에서 생산해 삼성전자 등에 공급할 예정이다.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를 한 극자외선용은 아니지만 ArF 포토레지스트 생산 역시 한일 관계의 불확실성을 의식한 한일 기업 간의 생존법으로 풀이된다.

지난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한국 사법부의 배상 판결에서 시작된 한일 관계 악화 이후 양국 기업들은 이렇듯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다. 그 사이 일본은 우리에게 수출 규제를 단행했고 우리 정부는 그에 맞서 소재·부품·장비 독립운동을 추진했다.

일본의 소재에 전적으로 의존했던 우리 경제에서 이른바 소부장 독립운동이 소재 국산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본질적인 한일 가치사슬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정부는 수입처를 다변화해 포토레지스트의 일본 지배력을 줄였다고 밝혔으나 실제 세계 1위 업체인 일본 JSR은 벨기에 합작 법인을 통해 한국에 이를 우회 공급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에 일본 회사들은 여전히 핵심 파트너이며, 양국 기업이 서로의 장점을 발휘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는 것은 가장 효율적인 생존 방식이기도 하다.



결국 한일 정부의 외교력 부재로 지속되는 이 소모전은 승자도 패자도 없이 기업들의 경영 불확실성만 높이고 있다. 양국의 지도자들은 난데없는 수출 규제와 독립운동으로 지지율을 끌어올렸다지만 정작 기업들은 정상적인 협력을 하는 데 있어서도 끊임없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특히 우리 사법부의 강제징용 판결에 근거한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 압류는 또다시 양국 재계의 뇌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에도 국내 기업인 LS엠트론이 지급해야 할 미쓰비시중공업 물품 대금에 대한 압류 결정이 내려졌다가 취소되는 해프닝이 있었다. 자산 압류가 그대로 진행됐을 경우 이 문제는 우리 기업에 대한 일본의 또 다른 보복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은 충분했다.

양국 정부는 이제라도 이성을 찾고 외교적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 우리가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 내 반도체·배터리 투자로 끈끈한 한미 동맹을 다시 견인했듯이 한일 가치사슬은 불안정한 한반도에서 한미일 안보 동맹을 확고히 하는 힘이라는 사실도 직시해야 한다.

마침 일본의 총리가 퇴진을 앞두고 있고 한국은 차기 대선 레이스가 시작됐다. 부디 순간의 지지율에 취하기보다는 백년대계로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성숙한 지도자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기업들이 지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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