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이노비즈(Inno-Biz) 인증제도가 처음 시작된 첫해에 인증기업이 된 '세나테크놀로지'는 20년 동안 이노비즈 인증을 유지하고 있다. 1998년 근거리 무선 통신을 바탕으로 한 산업용 네트워킹 제품 사업으로 시작한 세나테크놀로지는 꾸준한 기술·제품 개발을 통해 세계 최고 수준의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자전거, 모터사이클, 스키 등 스포츠 분야 무선통신 기기와 스마트 헬멧 부문에서 전 세계 시장 점유율 약 60%를 차지할 정도다. 20년 전 연매출 규모가 50억 원 이하였던 세나테크놀로지는 해외 판매 비중을 94%까지 늘리며 지난해 매출 1,110억 원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뤘다. 세나테크놀로지의 성공을 눈여겨 본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7월 지분의 54.5%를 952억 원에 인수했다.
혁신 기술 개발과 글로벌 진출로 스케일업에 성공한 세나테크놀로지처럼 이노비즈 기업들은 한국 경제의 허리 역할을 맡아왔다. 올해 한국이노비즈협회 20주년을 맞아 서울경제가 마련한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이노비즈 기업들이 한국 경제 성장의 탄탄한 기반을 일궈가면서 중견 기업으로 착실하게 도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이노비즈 기업들이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기 위해서는 디지털 혁신 기술에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면서 “소수 주력 제품으로 안정적인 성과 내기에 의존하지 말고 새로운 신기술 트렌드를 적극 도입하면서 글로벌 시장 진출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좌담회는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본부장, 이형오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 조희수 중소벤처기업부 기술정책과장, 임병훈 이노비즈협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홍병문 서울경제 성장기업부 부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이형오 숙명여대 교수는 최근 급변하고 있는 기업 환경을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와 비교하며 기술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교수는 "90년대 개인 간 정보화, 디지털화 격차를 의미했던 디지털 디바이드는 앞으로는 기업 현장에도 적용될 것"이라며 "코로나19 확산으로 비즈니스의 비대면화가 급격히 진전되면서 디지털 기술을 적극적으로 잘 활용한 기업은 성공하는 반면, 그렇지 못하거나 늦어지는 영세 제조업자는 어려움에 처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박찬수 STEPI 본부장은 "디지털 전환은 단순히 제품 경쟁이 아닌 전체 생산 프로세스 즉, 생산 활동의 플랫폼 사이 경쟁과 연관해서 살펴봐야 한다"며 메타버스(Metaverse)를 제조 산업의 핵심 키워드로 제시했다. 그는 "제조 공정을 가상 세계로 디지털 트윈(digital twin)해 생산성, 인력 교육을 어떻게 준비하느냐가 핵심"이라며 "기존의 국내 중소기업처럼 소수 주력 제품으로 내수시장에서 안정적인 성과를 유지하려 한다면 전체 시장에서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 간 양극화가 확대되는 가운데, 혁신에 적극 나서고 있는 이노비즈 기업에게 최근의 전 세계적인 새로운 변화의 흐름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희수 중기부 과장은 "변화의 시기에 기업이 성장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에 대한 꾸준한 투자가 매년 격차를 만들어 낸다"며 "매출 대비 R&D 투자 비율이 1%대인 일반 중소기업에 비해 평균 3% 이상인 이노비즈 기업은 단순 3배가 아닌 그 이상으로 성장성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임병훈 이노비즈협회장은 "모든 기술은 연결돼 왔으며 단계마다 이노비즈가 혁신 기술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며 "메타버스도 완전 새로운 게 아니라 이전에는 디지털 트윈이었고, 더 이전에는 3D 시뮬레이션이라는 개념에서 발전했다고 설명하면 기술 중소기업도 모두 이해할 것"이라고 말해 참석자 모두에게 공감을 얻었다.
디지털 전환을 바탕으로 한 글로벌 진출이 중소기업에 필수적이라는 데는 토론자 모두 한 목소리를 냈다. 박 본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오슬로 매뉴얼 개정에 따라 기업의 혁신성을 대리하는 지표가 곧바로 글로벌 지수가 됐다"며 "디지털 전환 가속화에 따라 기업은 기술적 한계를 고민할 게 아니라 글로벌화 의지 자체가 성장 의지 그 자체란 점을 인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독자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을 가진 중소기업은 글로벌 밸류체인과 온라인 플랫폼 속에서 활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과장은 "소비자 간 거래(B2C)는 어떤 온라인 플랫폼에 올라 타느냐에 따라 성과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제품 자체만이 아니라 어떻게 콘텐츠화 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제조업 현장의 스마트팩토리가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됐다. 임 회장은 "생산 이력이 추적되는 스마트팩토리는 대기업 브랜드로 종속되는 기존 체제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이 자신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대기업이라는 공급자 중심의 사고를 깨고 중소기업도 수요자 중심으로 밸류 체인을 확장해야 글로벌화는 물론 ESG(환경·사회·기업구조) 경영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ESG 경영을 중소기업의 걸림돌로 여길 게 아니라 혁신의 계기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부와 협회의 정책적 지원과 교육 컨설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조 과장은 "ESG가 중소기업에게 규제로 작용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접근 중"이라고 설명했다.
스마트팩토리,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우려에는 공통적으로 기우일 것으로 내다봤다. 조 과장은 "인공지능(AI)과 로봇 도입으로 당장 단순 제조 인력은 줄지만, 혁신 기업이 성장하면서 훨씬 괜찮은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 회장은 "절대적으로 제조 라인 옆 일자리는 줄여야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며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에게 맞춤 전달하는 새로운 인력에 대한 수요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디지털 전환 속에서도 생산 분야를 외주화하기보다는 제조 강국이라는 한국 산업의 강점을 유지하면서 '스마일 커브(R&D·생산·마케팅·A/S로 이어지는 부가가치 곡선)를 붙들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성년(20주년)을 맞은 한국이노비즈협회에 대한 조언도 이어졌다. 박 본부장은 "2020년대는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스케일업을 하는 구간에 해당하는 이노비즈 기업이 주목 받을 시기"라며 "국가 경제의 미래 자원이자 핵심 플레이어로 정부가 현장에 맞는 전용 사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과장은 "신생 스타트업이 생기는 데 벤처가 중심 역할을 한다면, 스케일업 시기에는 이노비즈가 전문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진국 수준의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 스케일업 과정은 정부보다는 이노비즈협회와 같은 민간이 주체가 돼 기술 혁신 생태계가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해외에 비해 한국의 기업 인증 제도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라며 "이노비즈의 개념을 더 명확히 하고, 반도체, 바이오, 기계 등 산업 종류별 맞춤형 정책을 구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임 회장은 "정부가 '제2 벤처붐'으로 창업에 집중하는 만큼 다음 단계인 스케일업을 위해 이노비즈로 성장 사다리를 잘 마련해야 한다"며 "2000년대 초반까지 광역 통신망 구축을 통해 'IT 강국'이 됐듯, 지금 스마트팩토리 인프라에 투자하면 얼마 후 새로운 스마트 제조 강국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사진=권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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