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스공사가 오는 2045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줄이는 데 5조 6,000억 원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됐다. 정부가 탄소 감축에 속도를 내는 만큼 일선 공공 기업의 재무 부담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26일 서울경제가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2045 가스공사 탄소 중립 로드맵’에 따르면 가스공사는 매년 탄소배출전망치(BAU) 대비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탄소 배출을 줄여나갈 계획이다. 2025년 BAU 대비 8% 감축을 시작으로 2045년까지 100% 감축을 달성하는 것이 목표다. 공사가 이 목표를 이루는 데는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신기술 개발이 필요하며 이에 따르는 비용은 총 5조 6,342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가스공사는 감축에 필요한 비용을 자체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고 소요 자금 일부를 외부에서 조달할 계획이다. 지난 2019년 58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으면서도 지난해 1,607억 원의 손실을 내는 등 실적이 유가에 좌우되다 보니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하기 위해서는 외부 수혈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에 따라 공사의 재무구조가 보다 악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스공사의 지난해 부채 비율은 369.2%로 전체 공공기관 부채 비율(167.5%)의 2배를 웃돈다. 공공 발전사의 한 재무 담당 임원은 “부채 비율이 200%를 넘을 경우 민간기업이라면 정상적인 채권 발행조차 어려운 재무 상태”라며 “공기업이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정부 정책에 맞춰 총대를 메다 보니 부채는 더 늘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탄소 감축을 위해 재생에너지 보급 속도를 더 높이려 하고 있어 다른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채 역시 가파르게 늘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중간 목표 격인 2030년 탄소감축목표치(NDC)부터 40% 수준으로 끌어올릴 방침이라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기존 목표(2030년 재생에너지 비중 20%) 대비 2배 높은 40%까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맞물려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RPS)’ 비율 등이 상향 조정되면 한국전력의 부담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RPS 제도는 대형 발전 사업자가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재생에너지로 공급하면 한전이 발전 원가와 전기 공급 가격의 차액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전력거래소의 RPS 비용 정산안을 보면 지난해 RPS 비율(7%)에 따라 한전이 쓴 돈은 2조 9,472억 원에 달하는데 비율이 상향 조정되면 한전은 매년 3조 원 이상의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 정부가 국내 탄소 배출 허용량을 줄이면서 탄소배출권 가격이 오르는 점도 공기업으로서는 부담스럽다. 가스공사에 따르면 2045년 배출권 가격은 톤당 6만 6,367원으로 현재(1만 9,000원)보다 3배 이상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공기업의 탄소 감축 이행 비용이 늘어날수록 전기 요금 등 국민의 부담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례로 RPS 이행 비용과 온실가스배출권거래비용(ETS)은 기후 환경 요금 명목으로 전기 요금에 포함되는데 한전은 늘어난 기후 환경 비용을 감안해 내년 전기 요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기후 환경 비용으로만 지난해의 70%에 달하는 1조 7,553억 원을 투입했는데 하반기까지 포함하면 지난해보다 훨씬 많은 비용을 지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공공 발전사의 한 관계자는 “경영 실적은 악화하는데 정부 정책에 따라 공기업이 감당해야 하는 몫은 늘어나는 상황”이라며 “경영난이 심화하면 그 부담은 결국 국민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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