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국민은행의 대출 대폭 축소는 NH농협은행과 같은 대출 전면 중단 조치의 바로 직전 단계라고 보고 있습니다. 시중은행들이 금융 당국의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를 거의 다 채우고 있어 농협은행과 같은 사례가 어디서 또 나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처럼 NH농협은행과 하나은행에 이어 국민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세가 정부 관리 목표치(5~6%) 턱밑까지 도달하면서 연말에는 대출 빙하기를 맞을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대출 총량을 맞추기 위해 주택담보대출·전세대출·집단대출 등 실수요 대출마저 죄는 가운데 금융 당국은 더욱 강도 높은 대출 규제책을 예고하고 있다.
◇대출 총량 턱밑까지…대출 중단 사태 오나=26일 KB국민은행에 따르면 지난 23일 현재 가계대출 잔액은 168조 8,297조 원으로 지난해 말(161조 8,557억 원)보다 4.31% 늘어났다. 아직 당국이 제시한 증가율 목표는 넘지 않았지만 증가 속도가 가파른 상태다. 국민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7월 말 2.58%에 불과했지만 8월 말 3.62%를 기록했다. 두 달도 안 돼 1.73%포인트나 뛴 것이다. 특히 이달 17일 4.15%에서 추석 연휴 이후 영업일이 23일 단 하루뿐이었는데도 0.16%포인트나 뛰었다. 이런 속도라면 5% 돌파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이는 당국 총량 목표치를 넘어선 농협은행이 신규 가계대출을 사실상 중단하자 대출 수요가 국민은행으로 몰렸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국민은행은 오는 29일부터 대표적 실수요 대출로 분류되는 전세자금대출과 집단대출 등 가계대출 한도를 대폭 줄이기로 했다. 주택담보대출에서는 모기지신용보험(MCI)·모기지신용보증(MCG) 가입이 제한된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으로 이 보험이 없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이 가능하다. KB국민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이 너무 빨리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대출 총량 관리 차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며 “전세자금대출 등 실수요자들에게는 영향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짜낸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시중은행의 추가 대출 여력이 거의 고갈돼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달 16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평균 4.69%에 이른다. 농협은행과 하나은행의 가계대출 증가율은 각각 7.4%, 5.04%로 이미 당국의 가이드라인을 넘어섰다.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3.9%, 2.83%로 아직 여유가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국민은행도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풍선 효과’가 이들 은행에서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행은 29일 이후에도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꺾이지 않으면 일부 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우리·신한은행의 대출 증가율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대출 한도에 여력이 있어 아직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계획은 없지만 은행들의 대출 증가 흐름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대출 총량 규제 완화 없다”=이런 가운데 금융 당국은 목표치 수정은 없다며 강경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금융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이날 “가계대출 총량 증가율 목표치 5∼6%를 상향 조정할 계획이 현재로서는 없다”고 못 박았다. 목표치를 수정할 계획이 없고 은행들이 연말까지 철저히 관리하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의 잠정 집계를 보면 지난달 금융권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은 8조 5,000억 원으로 7월(15조 3,000억 원)보다 증가 폭이 7조 원가량 감소했다. 이달에는 전방위 대출 죄기와 명절 상여금으로 마이너스 통장 대출이 감소하는 등의 영향으로 증가액이 4조 원대로 억제될 수 있을 것으로 금융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당국은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전이되는 ‘풍선 효과’를 차단하기 위해 상호금융·여신(카드·캐피털)·보험·저축은행에 대해서도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27일 열리는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서도 가계대출 관리 의지를 거듭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금융 당국은 다음 달 추가적인 가계대출 규제책도 내놓는다. 현재 내년 7월로 예정된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을 앞당기는 방안 등이 거론되고 있다. DSR 2단계에서는 총대출이 2억 원을 넘어서는 대출까지로 대상이 확대된다.
DSR 도입이 빨라지면 그만큼 금융기관의 대출 문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DSR은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소득의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대출 규제다. 현재 시중은행에는 40%, 제2금융권은 60% 비율이 적용되고 있다. 담보 가치에 상관없이 소득이 낮으면 그만큼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구조다. 또 그간 규제에서 벗어나 있던 비(非)규제지역의 아파트도 담보대출 금액이 2억 원을 넘어서면 상환 능력 심사를 받아야 한다. 2억 원을 넘지 않더라도 신용대출 등 비(非)주택담보대출까지 합산한 금액이 2억 원을 넘으면 규제 대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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